92화. 호스피스 병동.
92화. 호스피스 병동.
장인어른의 병세는 점점 더 안 좋아져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우리에게도 이제 결정을 해야 하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호스피스 전단을 수녀님이 오셔서 주셨다. 우리나라에서 이제 시범적으로 운영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호스피스의 장점이라면 환자 본인이 죽음을 인식하고 주변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중환자실로 옮긴 지 2주 만에 장인어른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없어 보였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병원에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재밌는 영화를 봐도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있어도 친구를 만나 술을 한 잔 해도 모든 것들이 재밌지가 않았다.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장인어른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6월의 어느 날, 장언 어른을 뵈러 병원에 방문을 했을 때의 일이다. 갑자기 내 손을 꼭 잡고 10분을 넘게 나를 가만히 쳐다보시는 장인어른이셨다. 나에게 눈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자네에게 우리 가족을 맡기고 가네. 자네라면 내가 믿고 가는구먼. 잘 부탁함세.’
라고 말이다. 너무 세게 잡으신 손을 놓는데 진심이 느껴져서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 전에 수녀님이 가족들을 소집해서 작은 행사를 열어 주셨다. 마지막으로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고 장인어른이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심경을 고백하는 시간도 가졌었다. 그때 장인어른이 나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마웠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네 덕에 행복했네.'
라고. 말씀하시는데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목이 메어 제대로 된 답을 드리지 못했다.
오늘은 말씀을 드려야 했다.
“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할게요. 저한테도 장인어른은 좋은 친구셨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다. 원래도 큰 눈인데 말라서 더 커진 눈을 꿈 뻑 감았다 뜨시는데 잘 알았다고 눈으로 말씀을 하시며 고개를 돌리셨다. 유언을 들을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행사를 하고 난 후로 자신의 신변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하셔서 그런지 장인어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호스피스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며칠이 지났다. 주현이가 골프 그림에 매진해 있을 무렵, 나는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팝 아트에 대한 개념으로 신작을 고민하고 있었다. 팝 아트라는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대중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엔디 워홀이 선두에 서서 익숙한 대중스타나 광고를 인용해 판화를 찍어내는 작품을 우리는 대체로 팝 아트라고 한다. 이 방식을 응용하고 변형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을 응용해서 ‘like a pop art’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구상하고 있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국 스타들을 그리고 그 위에 루이뷔통이나 샤넬 같은 명품 로고를 판화로 색색별로 찍으면 어떨까라는 구상을 하고 있었다.
작품을 진행하기 위해선 실크스크린을 할 때 꼭 필요한 감광기가 필요했다. 학교를 다닐 때 판화 수업을 했었기 때문에 실크스크린을 하는 방법과 대략적인 순서들은 머릿속에 있었지만 비싼 장비를 사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직접 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학교에서 쓰는 장비에는 형광등이 들어갔었다. 조명 일을 하며 써본 t5 조명을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장비를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광등과 다르게 안정기가 들어가지 않아 자리 차지도 많이 하지 않는다. 사이즈와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도면을 그려 보았다. 작업실에서 감광기를 만들기 위해 재료와 구조에 대해서 골몰하고 있었던 그때,
“ 아빠. 아빠!”
열심히 골프 그림을 그리고 있던 주현이가 혼잣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무슨 일이야? 주현아.”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으며 주현이 쪽으로 이동을 했다. 주현이는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 창밖에 아빠가 손을 흔들고 있었어. 진짜야.”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었다. 참고로 우리 작업실은 3층이다.
“ 잘못 본거겠지. 주현이가 장인어른 걱정을 너무 많이 하나보다.”
놀란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나도 조금 헷갈렸다. 그런데 그때 전화기가 울려왔다. 장모님이었다.
“ 뭐라고.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한 동안 곡기를 끊으시고 아무것도 드시지 못하시던 장인어른이 호흡과 맥박이 약해지고 있다고 가족들을 소집하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던 그림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그 길로 병원으로 향했다.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저녁이 늦은 시간이라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계절은 여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내가 일을 그만 둔지 약 4개월 만의 일이었다.
병원에 도착을 해보니 장인어른의 병실은 바뀌어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마지막으로 거쳐 가는 개인실. 이곳에 들어가신 환자는 하루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운명을 하셨다. 이곳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진통제만 주사한다. 모든 장기의 기능이 멈추기를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지켜보는 것이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그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장모님이 다들 연락을 했는지 처제와 손 위 처남과 처남댁도 근소한 차이로 병원에 도착을 했다. 가족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장인어른은 눈을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