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중환자실.

91화. 중환자실.

by 번트엄버

91화. 중환자실.


일을 그만두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집과 작업실. 그리고 병원을 드나드는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일상이었다. 장인어른의 병세는 짙어갔다. 몇 차례 시도했던 방사선과 항암치료는 중단했다. 암 덩어리가 자라는 속도를 어떻게 제어할 수가 없었다. 진통제가 없이 잠을 잘 수도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점점 절망해 가고 있었다.

하루는 작업실에서 주현이와 골프 그림에 매진하고 있을 때였다. 스마트 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세월호 침몰이라는 실시간 검색어가 뜨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러다가 금방 전원 구조라는 기사가 떴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아무 일이 없는 듯이 점심을 먹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장모님께서 주현이에게 연락이 왔다. 급하니 병원에 와달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작업하던 것 재료들을 정리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장인어른이 각혈을 해서 놀라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간호사와 의사가 다녀가고 의사 선생님이 주현이를 찾았다는 것이었다. 매번 중요한 말을 할 때마다 장모님보다는 큰 딸인 주현이를 호출하곤 했었다. 아무래도 장모님이 충격을 먼저 받으실까 봐 젊은 주현이에게 먼저 운을 떼는 듯했다.

병원에 도착을 해보니 모든 상황이 정리가 된 상황이라 장인어른은 평온해 보였다. 주현이는 혼자서 의사와 상담을 하러 내려갔다. 나는 심란한 마음에 티브이를 켰다. 근데 아까 전원 구조됐다던 배가 기울어서 가라앉고 있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조를 하고 있다고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선원들이 구조되는 장면만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전원 구조됐다는 뉴스는 오보였단 말인가?

“ 장인어른. 세상에 저런 일이 일어났네요.”

인기척에 잠에서 깬 장인어른도 눈을 돌려 뉴스에 집중하고 계셨다.

“ 그러게. 세상에 어쩐 일이 당가.”

힘이 없어서 도통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던 장인어른도 반응하셨다. 이해가 안 가는 게 매일 다니던 길을 다니던 배일 텐데 어떤 연유로 저 큰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 주민아. 잠깐 나와 봐.”

의사 선생님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주현이가 내게 와서 속삭였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 무슨 일이야? 선생님이 뭐라고 하셔?”

표정으로 상황을 대충 읽을 수 있었다. 분명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았다.

“ 아빠를 중환자 실로 옮겨야 된대. 면역력까지 떨어져서 관리를 해야 된대.”

듣던 중 안 반가운 소식이었다. 병세가 시간이 갈수록 더 짙어지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그래. 그 말을 하려고 널 불렀구나.”

병원에 있을 때는 아빠를 간병하느라 집에 돌아오면 시간을 쪼개 그림을 그리랴. 그 사이 주현이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 장모님이 많이 전담한다고 했지만 매일 같이 장인어른을 돌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장인어른은 중환자실로 장소를 옮겼다.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호스피스 병동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더 이상 연명 치료도 하지 않고 숨이 넘어갔을 때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는 병동이라고 했다. 보호자와 환자의 동의하에 들어가게 되는 곳인데 더 이상 살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의 선택지였다. 같은 층에 그런 병동이 있다는 것이 좀 찜찜하기는 했다. 문이 굳게 닫혀있는 곳이었다.


장인어른이 중환자실로 가게 되시면서 면회가 쉽지 않아 졌다. 그 사이 가라앉던 그 배는 완전히 가라앉았다.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않은 채 가라앉은 배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생계를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려야 했다. 온라인에서 그림을 파는 곳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골프 그림을 그려서 건네주면 500만 원이라는 거액이 들어왔다. 넉 달 정도의 생활비가 되는 돈이었다.

예전보다 재료 값이 많이 올라 있었다. 바로바로 그림 값을 받으니 망정이지 공모전과 전시를 많이 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니 그 벌이에 어떻게 유지를 했나 싶었다. 엄청난 의지와 신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90화. 다시 그림을 그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