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다시 그림을 그려라.

90화. 다시 그림을 그려라.

by 번트엄버

90화. 다시 그림을 그려라.


그 무렵, 빙그레 사장님은 유치장에 있었다. 빙그레 사장님은 공격적으로 마트 영업을 하는 도중에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3 개월째 대금을 받지 못한 마트가 문제였다. 빙그레 사장님은 그저 돈을 받기 위해 상대 마트 사장을 놀라게 하려고 술에 취한 채로 마트에 불을 지르겠다며 협박을 해서 돈을 받아내려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는데 불행하게도 실제로 불이 난 것이었다. 본인도 놀라 본인이 직접 119에 신고를 했고 112가 도착해서 현행범으로 체포가 됐다. 단순히 겁을 주려고 했기 때문에 경유를 준비했다고 했다. 경유에 불이 붙을지 몰랐다고 해명을 했다고 했는데 재판은 불가피해 보였다. 공격적으로 영업을 하던 빙그레 사장님은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서글퍼졌다. 그저 딸린 식구들과 잘해보자고 열심히 해보자고 하시던 분에게 생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주현이가 작업실에 있다며 작업실로 와달라며 연락이 왔다. 장인어른 간병을 시작하며 작업실을 자주 가지 못했고 갈 일도 없었다. 작업실에 있다는 그녀의 행동이 의아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작업실에 도착을 했는데 주현이는 뭔 구상을 하는지 골몰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 나 왔어. 주현아. 뭐해?”

책상에 앉아 종이에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같은 주현이에게 다가갔다.

“ 왔구나. 주민아. 고민할 문제가 생겼어.”

표정을 보니 그렇게 심각한 고민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 무슨 고민인데 그래? 말해봐.”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고 종이를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주현이었다.

“ 전에 그 미술관 대표님에게 연락이 왔는데 골프 그림을 대작으로 부탁을 하셨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때때로 주현이 에게 골프 그림을 부탁을 해 왔었다. 대체로 10호 정도만 원했던 분이 대작을 의뢰했다는 것이었다.

“ 골프 그림이면 그냥 하면 되잖아. 근데 뭐가 고민이야?”

평소에는 별로 고민 없이 작품에 들어가곤 하던 모습을 봐왔던지라 의아했다.

“ 대작이 한두 점이 아니야. 그래서 고민이 되는 거야. 아빠 간병 때문에 시간을 많이 쓸 수가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돈도 돈이고 작품도 작품이지만 부모님을 먼저 걱정하는 주현이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표님은 뭔가 큰 그림을 그리시는 거 같았다. 주현이에게 그림을 부탁하는 사이즈가 엄청났다. 같은 시리즈를 부탁했는데 100호 라면 두 점을 이어서 그려달라는 것이었고 50호 라면 4점을 이어서 그려 달라는 것이었다. 작품 가격은 500 만원을 준다고 하셨다. 작품은 되는 대로 갖다 주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솔깃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작품을 할 시간이 많지 않았던 주현이는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 내가 최대한으로 도와줄 테니까 해보자. 주현아.”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동력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다시 새로운 의지를 선사할 만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장인어른 간병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고민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일도 우리 인생에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설득에 주현이의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인어른을 치료하는 의사는 방서선 치료와 항암치료를 번갈아 가면서 진행했다. 장인어른은 구토를 너무 많이 하셔서 피골이 상접해 갔다. 그러다가 다시 황달이 오고 좋아지기를 반복하셨다. 그렇게 항암 2차까지 진행을 했는데 돌아오는 소견은 예상보다 안 좋았다.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방사선에 피폭이 되면 건강이 안 좋아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의 일정이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작업실에 들러서 주현이 그림 작업을 도왔다. 주현이가 있을 때는 옆에서 뭐라도 그림을 그렸고 없을 때는 왁구를 짜거나 젯소를 바르는 일 등을 했다. 그렇게 바쁘게 몇 달을 보냈다.

장인어른의 상태는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안 좋아져 갔다. 입 퇴원을 반복해야 했다. 입원실이 부족한 병원은 2주를 넘게 입원하지 못하게 했다.

집에 와서는 간호사들이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집으로 방문하는 의료 서비스를 해주었다. 그러나 상태가 안 좋아진 장인어른은 번번이 구급차 신세를 져야 했다. 나는 간병에 지쳐가는 주현이와 장모님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일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이러다가 소중한 사람들을 다 잃을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생활비야 의뢰받은 그림만 완성하면 될 일이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은 사장님을 놀라게 했다. 상황 정황을 설명하니 그도 나를 안 놔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도 많이 커서 육아도 이제 많이 쉬워진 상황이라 사장님도 이제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새로 온 직원도 이제는 6개월이 넘어 제 몫을 해내고 있었다. 내가 나가면 내 구역을 사장님이 다시 맡아서 하면 될 일이었다.

그 사이 문제가 있던 마트들은 정리에 들어갔다. 수금이 전혀 안 되거나 갑 질을 일삼는 마트들을 정리해 나가면서 둘이서 할 수 있는 정도로 규모를 줄여 나갔다.

그렇게 나의 우유일은 기억의 저 편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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