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 ]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by 더하기

지난주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라는 영화를 보았다. 최근 본 영화 중 가장 공감가는 작품인 듯하다.


우리는 판단하고, 규정하고 오해하기를 좋아한다. 영화를 보면서도 “누가 주인공이지?”, “저 사람이 잘못했구나”와 같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뿐 아니라 내 삶에서도 단편적 장면만으로 “저 사람은 무례한 사람이야”, “이 상황은 억울해” 등의 내가 판단하거나 판단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영화를 다 보고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쉽게 판단하고 오해하는구나. 나뿐만 아니라 영화 속 인물도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쉽게 오해하는구나. 잘못하는구나.

그래서 ‘오해’라는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았다. 誤(그르칠 오), 解(풀 해).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릇되게 해석하다’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잘못된 이해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풀어내려는 시도가 빗나간 행위라는 것이 흥미롭다. 오해란 어떠한 상호작용이 전제되어야 작동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결국 오해라는 단어는 관계와 분리할 수 없다. 관계의 부재, 소통의 부족이 오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결국 사회적 존재이니 ‘우리’라고 규정할 수 있는 사람들을 꼭 깊이 이해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테니까!

그쪽도 분명 누군가를 오해해서 [ ]하며 살아갈 테니까 오해라는 단어를 파편적 이해를 통해 이야기하는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를 꼭 보시라.

너도 나도 똑같이 무언가를 오해하며 살아가는 ‘오해 인간’이구나라는 사실이 그을린 안도감이 든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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