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사랑은 헤아림 불가

by 더하기

가끔 조부모 중 한 분이 아프면 어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할머니(또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보다 더 빨리 돌아가셔야 할 텐데…” 하고 말이다.
예전엔 그 말이 너무 잔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도 나이를 들어가면서 그 안에 담긴 사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나를 길러주고 먹여준 부모가 늙어갈 때, 내가 그분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과 과연 당신이 나를 키워준 만큼 보살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뒤섞인 마음일 거라고 짐작한다.
내가 속한 세대가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조금 다른 종류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그러한 말이 너무 잔인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기억을 품고 산다. 나 역시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 산다. 집 앞 자두나무에서 열매를 따주시던 모습, 노을 질 무렵 저녁 먹자고 부르던 목소리, 집 안 가득 퍼지던 밥 냄새와 김치 지짐 냄새, 그리고 생기 넘치게 웃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

그 모든 기억은 사랑의 가장 온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훨씬 작아진 할머니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습이 가끔 슬프지만, 그것 또한 어른의 사랑이라고 느낀다. 이렇게 나에게 ‘할머니’라는 단어는 오랜 시간 스며 있다.

그 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15세기 문헌에는 ‘할미’라는 형태가 먼저 보인다. 하(크다)와 ㄴ(어미), 엄(어미), 이(접사)가 합쳐져 ‘큰 어머니’를 뜻했다고 한다. 또 ‘할마님’이라는 표현도 쓰였는데, 한마(→한아미·한미)라는 말에 존칭 ‘님’이 붙은 형태였을 거라고 한다. 처음에는 ‘할미’가 평칭, ‘할머니’가 존칭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가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고 '할미’는 다소 낮춰 부르는 말로 남았다. 그래도 그 말속에는 여전히 ‘크고 높으신 어머니’라는 마음과 존중이 살아 있는 듯하다. 오래된 예의와 걱정, 그리고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할 깊이가 그 단어 안에 숨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른의 사랑을 아직도 다 헤아리지 못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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