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의 우정

by 정미리

“하늘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입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덕무는 서얼로 태어나 양반이면서도 양반 아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양반으로서의 삶을 사느라 지지리도 가난했다. 신분의 장벽 앞에 뜻을 펼칠 수 없었던 그의 삶의 즐거움은 책과 다정한 벗들이었다. 가난한 그들이 아끼는 책을 팔아 함께 술을 나눠 마시는 모습이 참으로 짠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가난한 날의 우정은 하늘 아래 가장 귀하데요"

말도 못 하게 친한 언니랑 밥을 먹다 나는 이 말을 툭 던졌다. 열심히 밥을 먹던 언니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도는 것이 보였다. 언니는 민망했는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그 눈물과 웃음의 의미를 내가 왜 모를까?


언니와 나는 정말 가난할 때 만났다. 그때 언니는 둘째를 임신해 만삭이었고 나는 첫째 만삭이었다.

우리 둘은 서로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에 뭐든지 서로 나눴다. 피를 나눈 형제에게도 말할 수 없는 사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우연히 언니집에 들렀는데 시댁에서 받아왔다며 아이 머리통만 한 배와 빨간 사과를 내 손에 쥐어줬다. 만삭인 언니를 위해 시부모님이 특별히 주신 과일이었다. 크고 비싼 과일은 너무도 달콤해 보였다. 언니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절반을 나에게 주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서 커다란 배와 사과가 방긋 웃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가 주고받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형편을 알아봐 주는 따뜻함이었다. 그 까만 봉지 안에는 묵직하고 뜨끈한 목이 메는 사랑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벗이 되었노라 하는 가난한 날의 우정이었다.


내가 병중에 있는 지금도 언니는 수시로 나를 끌고 멀리 드라이브를 간다. 그림을 사랑하는 언니는 미술관이나 바닷가 때론 예쁜 카페로 나를 데려간다. 말없이 함께 그림을 구경하고 바닷가 앞에서 멍을 때린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마셔도 언제나 우리에게는 산더미 같은 할 말들이 남아 있다.


하버드 의과대학 로버트 윌딩거 박사는 1938년부터 세계 최장으로 행복의 비결에 대한 연구를 했다. 참가자들의 건강기록을 수집하고 DNA 검사를 실시하고 직접 인터뷰를 했다. 이 대단한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예상 이외였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강도가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행복의 비결은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가난한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러 얼굴들이 떠올랐다. 나를 보면 웃는 얼굴들 또 그들을 보면 웃게 되는 내 얼굴까지

지금 내가 무엇을 가졌는가? 지금 얼마나 건강한가 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 누가 있는가가 행복의 비결인 것이다.

나를 웃게 하는 얼굴들 그리고 나를 보며 웃는 그 얼굴들을 떠올리며 행복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