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미터 달리기 23초'
학창 시절 나는 단거리 달리기는 잼병이었다. 하지만 재능보다 인내가 더 중요한 마라톤은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인생이 마라톤에 비유될 때 나는 안심이 되었다.
나의 30대는 온통 달리는 시간이었다. 동유럽의 작은 나라 세르비아에서 끊임없이 달리는 삶을 살았다. 새로운 언어를 누구보다 유창하게 말하고 싶어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 나라에서 동양인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머무는 그들을 아무도 좋아하지 않았다. 돈밖에 모르는 족속들이라고 무시를 했다. 나 역시 동양인이라 항상 중국인으로 오해를 받았다.
인형같이 예쁜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중국여자다.'라고 외치면 그 작은 입술에서 나온 말이 무지막지하게 상처가 되었다. 무시는 받아도 받아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런 날은 집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8년이 지나자 그동안 쏟다 부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 이곳 타국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 어느 봄날 나의 언어선생이자 친구인 까따리나 에게 말했다
"올해부터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거야!"
39살의 봄날, 나는 세르비아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할 계획을 세웠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유럽을 휩쓸었을 당시 몇몇 서유럽에서 세종학당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몇몇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다 이 일이 나에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꿈과 시작 앞에 나는 마구 설레고 있었다.
그러나 그 봄이 다 가기도 전 나는 암 선고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랜 시간 갈고닦아 무지하게 달리고픈 나에게 출발 신호는 떨어지지 않았다. 달릴 힘과 의지가 넘치는데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의지와 상관없이 멈춰야 할 때 그것은 거대하고 거대한 절망이었다.
멈추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하며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 달리는 삶이 너무나 힘들어 멈추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것과 멈추는 것... 어느 것이 더 어려운 일일까?
달리든 멈추든 정말 힘든 것은 빼곡하게 세워 놓은 인생의 계획표가 소용없어질 때가 아닐까?
어제는 조카들의 방학 계획표 짜는 것을 봐줬다. 3학년 남자아이는 저녁마다 자전거로 라이딩을 즐겨야 한다고 했다. 4학년 여자아이는 다이소 쇼핑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둘은 좀 무리다 싶을 만큼 촘촘하게 계획표를 짜고 있었다.
" 이 계획표대로 살 수 있겠어?"
나의 물음에 둘 다 '아니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 계획표대로 살아본 적은 없는 거 같아요!"
"안되면 계획표를 바꾸면 돼요"
3학년과 4학년, 남자와 여자, 나이도 성별도 달랐지만 둘은 똑같은 대답을 했다.
계획표대로 살 수 없다면 계획을 바꾸면 된다. 인생이 계획표대로 되지 않을 때 내가 할 일은 계획표를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들여 세운 인생 계획표가 쓸모 없어진 날, 그것은 나에게 사형선고와도 같았다. 고국을 떠나 30대를 쏟아부어 만든 계획표, 그 안에는 나의 미래가 들어 있었다.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돈과 열정과 스스로를 다독이며 날마다 일으켜 세웠던 숱한 마음이 녹아 있었다. 그 계획표를 손에 쥐고 오랜 시간 울었던 것 같다.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
인생이 우리에게 너무 신 레몬을 준다면 우리가 할 일은 레모네이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계획표대로 살 수 없으면 계획표를 바꾸면 돼요' 어린 조카의 말이 여전히 내 귀에 맴돈다.
공들여 세운 계획표와 함께 중단된 나의 인생이 너무 신 레몬과 같았다. 그래서 레몬만 만지작 거렸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레모네이드를 만들 시간이 된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