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반짝거리는 것을 찾습니다.

by 정미리

"삶은 비극적이다.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저절로 알게 된다."

'팀 켈러의 고통에 답하다'를 읽고 있다. 그 속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우리가 당하는 무자비 하며 우연 속에서 몰아닥치는 삶의 고통 앞에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호기로운 제목 앞에 마음이 삐딱해졌다.


요즘 같은 시대에도 이렇게 불치병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 역시 암이란 불치병으로 10년 넘게 고통받고 있다.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했지만 재발을 막지 못했다. 다시 독한 치료를 받았지만 한숨 돌리는 사이에 다시 자라났다. 그리고 지금도 그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나는 늘 겁먹은 도망자가 된다. 나를 쫒는 녀석은 빠르고 겁나 힘이 세다. 그림자로만 비치는 녀석의 모습은 어마어마하다. 두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도망쳐야 하는 삶, 가끔 방심하면 갑자기 나타나 으르렁 거리는 녀석을 느낄 때면 나는 두려움으로 풀썩 주저앉게 된다. 도망가는 삶을 그만 포기하고 싶어진다. 차라리 잡혀 먹히고 싶어진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그만 끝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삶은 비극적이다. 굳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인간이라면 저절로 알게 된다."

베란다에 앉아 한가롭게 햇살을 쬐고 있어도 나는 이 말에 완전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앞에 닥친 비극 속에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심으로 내 아이들은 이 명백한 사실을 조금만 더 늦게 알았으면 좋겠다. 또한 비극 속에 숨어있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길 바란다. 공부하는 재능, 예술하는 재능은 결국 소수에게 주어 졌기에 크게 바라진 않는다. 그러나 내 아이들은 비극적인 삶 속에 숨어 있는 작고 반짝거리는 기쁨을 찾는 재능만은 탁월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찾은 작고 반짝거리는 기쁨들은 대게 사람과 자연 속에 숨어 있었다. 오름을 오를 힘이 남아 있다는 뿌듯함, 삼양 바다에서 바라보는 저녁 하늘과 노을, 아장아장 걸어가는 어떤 아기,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어린 딸, 무뚝뚝하게 고맙다고 말하는 아들, 밥 먹자며 날 불러내는 사람들, 남편 흉을 보며 사심 없이 함께 웃는 시간들 모두 작고 반짝거리는 것들이다.


2014년 수술과 치료를 위해 남편과 아이들을 놔두고 혼자 한국에 왔다. 얼마 후 설 연휴기간에 맞혀 남편만 잠깐 한국으로 날아왔다. 너무 슬펐던 우리는 어떤 말도 나눌 수가 없었다. 그저 말없이 어두운 동네를 걸었다. 그 걸음은 마당으로 훤히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단독주택 앞에서 멈쳤다. 남편이 말했다.

" 우리도 저렇게 같이 모여서 저녁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이 날마다 누렸던 일상이었다. 깨져버린 일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함께 저녁을 먹고 서둘러 아이들을 씻기며 잘 준비를 하던 그 정신없음은 행복이었다.

똑같은 일상을 여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축복이었다.


죽음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음을 느끼는 날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생각한다. 내가 가야 할 곳이 하나님 나라임을 감사하게 된다.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고 반짝거리는 것들이 고통을 덜어내 주진 못한다. 하지만 고통을 견딜 이상하고도 새로운 힘을 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품은 소망과 작은 기쁨은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게 한다. 난 어떤 순간에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싶어진다.


오늘도 나는 작고 반짝거리는 것들을 찾는다.

고통이 온통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시원하게 말하고 싶지만 그럴만할 용기는 없다. 왜냐면 나는 또 고통 앞에 두렵게 서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상해 본다. 저 높은 하늘에서 나를 위해 작고 반짝거리는 것들을 한 보따리 뿌려줬을 것이라고, 나는 다만 그 반짝거리는 별들을 힘써 찾아 내 유한한 시간 속에 채워 넣고 싶을 뿐이다. 그 별들을 찾고 누리는 기쁨 속에 내 행복의 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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