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녀는 시장통 커피를 마셨다.

by 정미리

거지가 없다는 제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3 무(거지, 도둑, 대문)의 고장답게 나는 자라면서 거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30대는 거지가 많은 세르비아에서 보냈다.


위대한 민족 지도자였던 티토대통령 사후 세르비아 경제는 기울기 시작했고 밀로세비치의 인종청소 때문에 나토 공습과 오랜 기간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았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의 경제는 완전히 바닥을 쳤고 어디에서든 거지나 집시를 만날 수 있었다. 나라가 가난하다 보니 외국인에 대한 거주비자는 비쌌고 여러 명 목으로 세금을 걷어갔다. 우리 가족은 그 나라에서 숨을 쉰다는 이유로 다양한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형편은 항상 빠듯했다. 그러나 그 나라 사람들은 더 가난했고 가난한 나라의 거지들은 더더욱 불쌍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면 나는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시장으로 향했다. 농산물이 풍부한 이곳의 아침 시장은 다양한 과일과 채소, 신선한 치즈가 풍성했다. 생필품을 거이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필품 가격은 비쌌지만 농산물 가격은 싼 편이었다.


우리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시장을 갈 때마다 긴 지하통로를 통과해야 했다. 그 지하통로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종이 상자를 깔고 앉아 아쉬운 눈으로 한 푼을 구걸하는 거지들이 있었다. 어린 아기를 안고 "우유 살 돈이 없어요"라고 애처롭게 말할 때면 차마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런 지하통로에서 매번 나를 무력하게 멈춰 세우는 분이 있었다. 마흔 살은 족이 넘어 보이는 비쩍 마른 그녀는 몸 한쪽 부분이 전부 심한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얼굴부터 다리까지 화상 입은 상처가 끔찍했다. 그녀는 치마를 입고 화상의 흉터가 가장 심한 왼쪽 다리를 훤히 드러내 보이며 항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지나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한 푼을 구걸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그냥 지나치는 건 힘든 일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지갑을 열어 나름 넉넉하게 그녀의 동냥 그릇을 채워 주었다. 딱히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녀는 묵묵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날도 그녀는 지하통로에 다리를 훤히 내보이며 앉아 있었다. 나는 시장 볼 돈이 부족했지만 100 디나를 넣어 주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 시장을 봤지만 항상 사야 할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돈은 항상 부족했다. 나는 시장을 몇 바퀴 더 돌며 좀 더 싼 것을 찾아다녔다.


시장 가방 가득 장을 보고 낑낑 데며 돌아가는데 그녀를 또다시 만났다. 그건 지하통로가 아니라 시장 근처 야외 커피숍. 그녀는 그곳에서 한가롭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시장 근처라 커피값은 저렴해서 아마 150 디나 정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준 100 디나로 그녀는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더 싼 물건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시장을 여러 번 돌고 낑낑 데며 계단을 오른던 나는 기가 막혀 계단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커피값을 대주기 위해 내가 한 수고를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나는 무거운 시장가방을 내려놓고 미운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녀는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멀리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시끄러운 시장통 야외 커피숍에서 그녀는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고요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과감하게 그녀를 지나쳤다. 시장을 보고 계단을 올라올 때면 그녀는 또다시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한 푼을 더해 주든 말든 그녀는 날마다 아침 일을 마치고 조용히 모닝커피를 마셨다. 시끄러운 시장통에 앉아 싸구려 커피 향을 맡고 그 맛을 음미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지 경건하기까지 했다. 어려운 일을 해낸 자신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처럼 그녀는 날마다 모닝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누리고 있었다. 어쩌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인생에서 찾은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아침마다 그렇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나는 2살, 5살 아이 둘을 키우며 언어를 공부하고 가게를 운영하고 중국상가에서 물건을 떼오며 날마다 정신없이 살았다.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었다. 두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오후 3시 이전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면 어떤 날은 내가 사라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숨을 몰아 쉬어야 할 때면 문득 그녀가 생각나곤 했다. 그녀가 불쌍한 게 아니라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내가 더 불쌍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의 분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작든 크든 나에게 이미 주어진 행복을 찾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진정 복된 삶이라는 뜻이다.


그녀는 150 디나 짜리 싸구려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이미 주어진 행복을 찾아 누리고 있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행복을 찾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처럼 감사한 일이 어디 있을까? 시장통 싸구려 커피를 마시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녀의 내공이 대단한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