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버스비가 만원이 아닌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1988년, “세계는 서울로 , 서울은 세계로.” 모두가 이 구호 아래 서울 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했다.
그해에 나는 중학생이 됐다.
경제는 날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사회 기반시설들은 인구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생이 된 나는 날마다 전쟁을 치르듯 버스를 탔다. 정거장 앞에서 간절하고도 비장하게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의 등교를 책임지던 버스는 저 멀리 성산에서부터 학생들을 태우기 시작해서 마지막에 우리 동네에 도착했다. 그때쯤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저 멀리 버스가 보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버스가 멈춰 설만한 위치로 가서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가지런히 줄을 설 필요는 없었다. 정거장 위치가 정확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었고 줄을 선다고 해서 먼저 태워주는 것도 아니었다. 정거장 근처 어디쯤, 운전기사 맘대로 버스가 서면 우리는 그 열린 문을 향해 우르르 달렸다. 어떻게든 그 버스를 타야 지각을 면하기 때문이었다. 여학생이거나 남학생, 선배 혹은 후배가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다음 버스가 제시간에 온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설사 온다 해도 그 역시 만원일 것이다. 이미 여러 대의 만원 버스가 태워줄 수 없다고 거칠게 손을 내저으며 우리를 못 본 척 가버린 상황.
그 당시에는 버스마다 요금을 받는 차장(조수)이 있었다. 젊은 차장은 놀랍게도 그 만원 버스에서 모두에게 정확하게 버스요금을 받으며 학생들을 버스 안으로 차곡차곡 밀어 넣었다. 더 이상 버스 안에 공간이 없으면 차장은 어쩔 수 없이 나머지 학생들을 남겨두고 버스를 출발시켰다.
치열한 경쟁은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젊은 차장은 그만의 어떤 사명감으로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아침마다 온 힘을 다해 우리를 버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발 디딜 틈이 없다는 말이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던 그 버스는 무수한 우리들의 몸 때문에 문이 닫히지 않았다. 그러면 차장은 우리를 끝까지 밀어 넣고는 그 용감하고도 젊은 몸으로 버스문을 대신했다. 그 넓은 가슴과 튼튼한 어깨가 버스 문이 되어 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막았다. 그는 터질 듯 불뚝거리는 양팔로 닫을 수 없는 문의 양끝을 움켜잡고 버스에 매달린 채 온몸으로 외쳤다.
“오라이!!!”
버스가 커브를 돌 때면 문 앞에 서 있던 우리의 몸은 온전히 젊은 차장에게 쏠렸고 그는 온몸을 다해 우리의 몸무게를 감당해 냈다. 사춘기 소년 소녀의 몸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나의 눈에도 우리의 몸무게에 눌린 채 필사적으로 버스문이 되어주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렇게 아슬아슬 우리는 학교에 도착했다.
어른들은 우리가 타는 버스를 만원 버스라고 불렀다.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우리는 왜 만원 버스라고 부르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버스비가 만원이 아닌 것이 다행일 뿐이었다.
우린 그때 그렇게 어렸다. 그래도 그가 아침마다 엄청난 사명감으로 우리를 등교시켜 주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