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꿈이 뭐냐고 그들에게 묻지 못했다.
해 질 무렵, 학교운동장으로 간다.
초록색 천연잔디가 깔려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이곳은 사람들이 걷고 뛸 수 있도록 운동장 테두리를 따라 트랙이 잘 만들어져 있다. 또 한쪽 구석에는 초록색 고무바닥이 깔끔하게 깔려 있어 아이들이 피구, 축구, 줄넘기는 물론 롤러스케이트도 탄다.
어느 계절이어도 어둠이 내릴 때쯤 학교 운동장 하늘은 아름답고 바람은 선선하다.
젊은 사람들은 달리기를 하고 나이 든 동네 아줌마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수다를 떨며 걷는다. 나도 거이 매일 이곳에서 8 천보를 목표로 열심히 걷는다.
운동장 한쪽에서 10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열심히 축구공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축구선수 유니폼을 입고 손에는 두툼한 골키퍼 장갑을 낀 녀석은 벽이나 계단에 부딪쳐서 튕겨 나오는 축구공을 몸을 굽혀 필사적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심지어 튕겨 나오는 공을 향해 몸을 던지는 바람에 그 작은 몸이 공을 껴안은 채 바닥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천천히 걸으며 녀석을 보니 여간 열심인 것이 아니다.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목덜미로 흐르는 땀방울이 굵었다. 뭘 해도 할 녀석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 바퀴를 더 돌고 와보니 녀석은 안 보이고 축구공만 뎅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그래, 그 정도 연습했으면 됐지, 공이나 잘 챙기고 가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잠시 후 녀석은 이온음료를 마시며 다시 학교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축구공과 씨름을 시작했다. 나는 녀석에게 묻고 싶었다. ' 넌 꿈이 뭐니?' 녀석의 당찬 대답이 듣고 싶었다. 그러나 한가로운 나의 발걸음이 부끄러워 감히 물어볼수가 없었다. 녀석은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작은 가슴이 쉴 새 없이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밤 산책 나온 아낙네가 물어본다면 그 질문이 너무 실없어 질것 같았다.
고교 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고 2 때부터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또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를 미리 결정해서 그 대학이나 학과에서 원하는 수업을 들어야 대학 가기가 유리해진다고 한다.
고1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는 딸은 고민이 많다. 원하는 학과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하는 과목을 듣고 싶어도 수강학생이 적으면 내신이 안 나오기 때문에 아이들이 몰리는 과목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신을 따려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호기롭게 프랑스어를 선택했던 선배는 수강학생이 적어 높은 점수를 받고도 4등급을 면치 못했다고 했다.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아직 정하지 못한 17살, 내신 때문에 원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없다는 고1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결정하기에 17살은 너무 이른 나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딸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꿈이 뭐니?' 현실을 생각하니 너무 쓸데없는 질문 같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아들은 간호학과에 갔다. 취업과 호기심이 8:2였다. 막상 간호학과에 가보니 자신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적성과 능력과 취업 사이에서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보였다. 고민하는 20살 아들에게도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꿈이 뭐니? 하지만 차마 물어볼 수가 없다. 간호학과로 밀어 넣는데 나 역시 한몫을 했기 때문이다.
'너는 꿈이 뭐니?' 이 단순한 질문을 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물었다.
'그런 너는 꿈이 뭐니?' 50이 된 나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질문 같았다. 운동장을 돌며 발걸음마다 이 질문을 곱씹어 보았다.
내 꿈은 매일 글을 쓰는 것. 날마다 글을 쓰는 것이다. 쓰고 읽는 삶을 사는 것이 50이 된 나의 꿈이다.
단순하고 싱거운 이 꿈을 위해서도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헐떡이는 저 10살 아이처럼 고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때론 고1 딸아이처럼 이렇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적성과 능력을 따져보는 20살 아들처럼 나의 적성과 능력을 의심하는 날이 더 많을 것을 안다.
그저 매일 쓰고 읽는 것.
겉으로 보이는 열매가 없어도 내 안에서 기쁘고 뿌듯한 열매가 먼저 맺히는 일. 그것이 내가 가진 꿈이다.
"너는 꿈이 뭐니?"
저 어리고 젊은 청춘들에게 차마 하지 못한 질문이 내내 내 마음을 쓰라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