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무성 영화관

나만을 위한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by 정미리

그렇게 만원 버스를 타고 도착한 교실 역시 만원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그 해에는 여학생수가 애매하게 많았다. 두 개 반에는 넘치고 세 개 반에는 모자라는 학생수였다. 결국 여러 사정을 고려해 65명과 64명인 두 개 반으로 결정되었다. 사춘기 소녀 65명을 한 교실 안에 몰아넣은 것이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은 책상 간 거리는 절 때 살이 찌면 안 될 정도였다. 교실 끝에 있는 휴지통까지 오가기가 어려워 모두가 검정 비닐을 책상옆에 걸고 개인 휴지통으로 사용했다.


사춘기 여학생 65명이 모여있는 교실이란?

날마다 몸과 마음이 자라나는 우리들은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눈앞에 존재하고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웃음 버튼이 되었다. 버스에서 봤던 남학생부터 젊은 버스 차장의 팔뚝까지 대화의 주제는 항상 새롭고 또 심각했다. 선생님이 들어와도 웃었고 선생님이 나가면 더 웃었다. 이유도 없이 웃는 아이들과 아침부터 책상에 엎드려 우는 여자아이까지. 그 시끄럽고도 찬란한 북새통에서 나는 중학교 1년을 보냈다.


이런 터질듯한 교실의 가장 큰 문제는 시험기간이었다. 언제나 인적자원이 전부인 대한민국인지라 그 시절에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시험을 봤다. 이런 좁은 교실에서는 컨닝을 안 하는 것이 더 어려웠다. 의도하지 않아도 고개를 살짝 돌리면 옆 친구 시험지가 보였다.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은 시험 때마다 책상 2줄을 복도로 빼는 것이었다. 뒷번호부터 두줄이 복도로 나가서 시험을 봐야 했다. 나도 복도로 나가야 했다. 내 자리는 교실과 복도사이에 있는 창가였다.


어쩔 수 없이 밀려난 그 자리가 점차 마음에 들기 시작한 것은 시험지를 먼저 제출한 그날부터였다. 딱히 할 일이 없어 고개를 살짝 돌렸는데 반쯤 열린 유리창 너머로 교실 안 풍경이 보였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러나 점차 아이들의 사생활이 내 눈에 들어왔다.

쉴 새 없이 귀밑머리를 모나미 볼펜으로 배배 꼬고 있는 아이, 귀찮다는 듯 귓구멍을 후비는 아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는 아이 그리고 시험지를 한없이 쳐다보는 것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어 보이는 아이까지.


한쪽 겨드랑이에 사랑의 매를 끼고 뒷짐을 진 선생님은 어그적 어그적 책상 사이를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교실 뒤쪽에 가서는 크게 하품을 했다.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지루하긴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엄격하고도 고요한 시험시간에 내 눈에 보이는 사사로운 교실 안 풍경은 마치 한 편의 무성영화 같았다. 내가 앉은자리에서만 볼 수 있는, 나만을 위해 상영되는 영화말이다. 영화 속 친구들의 모습은 내가 교실에서 만난 모습과 다르게 느껴졌다.


'시의 맛을 알기 위해서는 시를 암송해야 한다'라고 말하던 젊은 여자 국어 선생님의 별명은 오리 궁뎅이었다. 걸을 때마다 볼록하고 탄탄한 엉덩이를 관능적으로 실룩거렸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키득거리며 몰래 쳐다봤던 그 엉덩이를 자세히 쳐다봤다. 복도에서 만날 때마다 이유 없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총각선생님의 얼굴을 부끄럼 없이 오래도록 쳐다보는 날도 있었다.


모두가 조용히 고개 숙인 그 시간에 벌어지는 은밀하고도 사사로운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의 비밀을 알아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행동들이 사랑스러워 옅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정말 그 모든 것을 하나의 풍경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2학년이 되어 여학생반이 세 개가 되면서 더 이상 복도로 나갈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나만을 위한 무성영화관은 문을 닫았다. 그 사랑스럽고 비밀스러운 나의 배우님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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