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픔이 내 안에서 헤아려 알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은 공연장, 야구장만은 아니다. 병원, 내가 자주 가는 대학병원은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사사로운 대화 속에서 팔도 사투리가 소곤소곤 들려올 때면 그저 반갑다.
검사 예약을 하기 위해 수납창고 앞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왜 죽어? 난 죽을 수 없어! 죽을 수 없다고!”
한쪽 구석에서 들려온 큰 소리에 넓은 암병원 복도는 순식간에 얼어붙어버렸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같이 온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작은 체구에서 나온 이 말은 점점 증폭되어 넓은 복도를 채우고 침묵 속에 가라앉게 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조용해 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새벽부터 서둘러 서울로 상경했을 것 같은 그녀는 병 때문인지 평생을 해온 농사일 때문인지 얼굴이 유난히 검었다. 함께 온 지인들이 그녀를 달래며 안아주었다. 어른이 어른의 품속에서 울고 있었다.
부끄럼 없이 엉엉 울고 있는 그녀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그녀는 분명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살면서 남들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렸을 수도 있다. 희생적인 어머니였을 테고 악착같은 면이 있어도 그런대로 좋은 아내였을 것이다.
그녀의 손은 일생을 쉬지 않고 무언가 심고 거두었을 것이다. 새벽마다 밭으로 향했을 그녀의 발자국 뒤로 벼와 배추와 마늘과 사과등이 충실하게 자랐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먹은 어느 농산물은 그녀의 손을 거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손과 발을 생각하면 누구든 겸손해지지 않을까?
나는 혼자서 그 소식을 들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너무 놀라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장 먼저 어린 두 아이가 생각나 뜨거운 눈물이 나왔다. 남편이 옆에 있었다면 나도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는 마음껏 울 수가 없었다. 부끄럼 없이 울기 위해서는 받아줄 어깨가 필요했다.
그녀가 눈물과 함께 쏟아내는 무수한 말들이 순식간에 달려와 내 가슴팍에 박혔다. 그리고 아팠다. 먼저 걸어간 이들은 뒤따르는 자들의 고통을 헤아려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지금 산사태처럼 쏟아지는 이 두려움을 막아설 새 마음이 당신에게 있음을. 이 고난과 두려움에 맞설 용감한 손과 부지런한 발을 가진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 사라지지 않고 내게로 달려와 가슴팍에 부딪힌다면 그건 내 아픔이기 때문이다. 입 밖으로 나오면 금세 죽어버리는 무수한 말들 속에서 여전히 살아서 내게로 달려온 말들은 여전히 내게도 상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픔이 내 안에서 헤아려 알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내가 위로할 힘을 가진 사람이란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