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양팔을 벌려 거대한 품으로 넘치는 애정을 담아 힘껏 안아주고 싶다.

by 정미리

하루 종일 검사를 받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 올해로 11년째 나는 이렇게 암과 싸우며 치료와 검사를 반복하고 있다. 쉴만한 조용한 곳을 찾다 보니 어느 진료실 앞에 앉게 되었다. 그때 어린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진료실 밖으로 나왔다. 간호사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그녀는 쉼 없이 흐르는 눈물을 작은 손등으로 바쁘게 잘라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은 분명 그녀의 것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눈물을 제어할 힘도 없어 보였다.


아마도 그녀는 오늘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아직 어린 그녀는 그 몹쓸 소식을 혼자 들어야 했나 보다.


병원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아픈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그 여린 마음이 보였다. 어떤 날은 그 여린 마음이 가여워 슬며시 다가가 말을 걸어볼 때도 있다.


오늘 그녀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소식은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누구와 함께 들어야 하는지를 몰랐을 것이다. 그 두려운 소식 앞에 눈물은 얼마나 나오는지? 그것을 멈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들을 가늠하기엔 그녀는 너무나도 어려 보였다.


그런 당혹감은 의사 선생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 이런 소식을 이처럼 어린 그녀에게 전하는 삶을 살게 될지는 의사 선생님도 몰랐다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녀는 오늘, 우산도 없이 억센 장대비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이 두려움을 나누며 덜어낼 사람이 없어 보였다. 하물며 무작정 달려가 실컷 울 수 있는 엄마도 없어 보였다.


나는 잠시 나의 엄마를 생각해 보았다. 나에게도 달려가 울 수 있는 엄마는 없었다. 모든 엄마가 아픈 딸을 위로해 주고 안아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엄마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든 혹은 멀리 있든, 심지어 살아있든 그렇지 못하든, 확실한 것은 그녀의 엄마는 지금 어린 그녀 옆에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그 작은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잘라내게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울고 있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 순간 나는 간절히 그녀의 일회용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정말 필요한 순간만을 위해 존재하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이 기꺼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움켜쥔 외투를 ‘선의’란 이름으로 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이 병과 싸우는 내내 어릴 적, 힘든 순간 자신을 안아주지 않았던 엄마, 이런 소식을 혼자 듣게 만들어버린 엄마를 끊임없이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엄마이기 때문에 무조건 기대했던 감정들과 외면당한 쓰라린 기억들은 암이란 질병보다도 그녀를 더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서둘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어린 그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를 나는 온 마음으로 안아주고 싶다. 양팔을 벌려 거대한 품으로 넘치는 애정을 담아 힘껏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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