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2살이 어린 남편은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졌다. 그는 도시 냄새가 나는 서울 남자였다. 나와 다른 세계에서 자란 그는 온몸을 다 뒤져봐도 화나 분노가 한 줌도 없어 보였다. 나의 결혼 제1 조건,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을 만날 것. 그는 딱 그 조건에 부합하는 남자였다. 더욱이 서울 사람 같지 않은 순진함과 낙천적인 태도가 매력적이었다.
그날은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를 부부라는 질기고도 가냘픈 끈으로 이어준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쩌다 결혼을 앞둔 우리의 대화가 토종 씨앗으로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분이 남편에게 물었다. “자네, 좁쌀 아는가?” 나는 그 질문 앞에 거칠고 까끌거렸던 어린 시절의 밥상이 떠올랐다.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거 새가 먹는 거 아닌가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 대답에 진심으로 놀란 이유는 남편의 대답 역시 너무나 맑은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내 머리 위로 날아 앉는 것만 같았다. 이 확연한 차이 앞에 나는 잠시 주춤거렸다. 그러나 어느새 나는 이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왜 항상 정신을 차리고 보면 지나가 있는 걸까?
이 좁쌀을 시작으로 우리 부부는 날마다 다름이 드러났다. 서로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덮어주기엔 시간이 갈수록 우리의 눈은 밝아졌고 그 다름은 극명해져 갔다.
그는 항상 잔잔한 강처럼 고요했고 그 강물은 너무나도 천천히 흘러 성질 급한 나를 답답하게 했다.
젊고 가난한 부부에게 문제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의 여유로움과 낙관적 태도 때문에 놓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을 나는 더 촘촘하게 챙겨야만 했다. 손해 보는 상황 앞에서도 말도 안 되게 긍정적 해석을 해 버리는 그의 논리를 들어야 했다. 삼류 드라마를 보며 체통 없이 너무 쉽게 웃고 너무 쉽게 우는 이 남자를 나는 온몸이 지치도록 미워한 적도 있었다.
우린 너무 달랐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한 몸처럼 기뻐했고 한 사람처럼 동일한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마치 우리가 진짜 부부가 된 것 같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그를 더욱 나답게 만들고 싶은 시도를 멈추지 못했다. 아쉽게도 이런 집요한 나의 수고는 그를 더욱 그답게 만들 뿐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키가 컸다고 한다. 반면 나는 항상 키가 작았다. 그와 내가 다른 것은 30cm 차이가 나는 우리의 키처럼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큰 능력도 없고 큰돈도 없고 무엇보다 큰 욕심이 없는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거대한 낙관주의와 무한한 긍정의 자세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그를 나는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사실 그는 그답게 태어나서 그답게 살아갈 뿐이다. 모두가 그런 것처럼. 때때로 그는 잘 닦인 거울이 되어 내가 얼마나 집요하고 교묘하게 내 생각을 그에게 강요하는지를 선명하게 비춰준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와의 가식 없는 관계는 나의 거칠고 무례한 민낯을 부끄럽도록 들어냈다. 이런 무례한 여자를 보며 '사랑한다' 고백하는 그는 이상한 남자가 틀림없다.
어리석게도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나를 닮은 사람이길 원한다. 그래서 부지런히 요구하고 과도하게 분노한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일 뿐이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거대한 바람을 몰고 오지만 중심은 고요한 태풍의 눈. 비바람이 몰아치고 나무가 뽑히는 태풍 속에 나를 세워두고 말이다.
이런 태풍의 눈을 사랑하는 나는 정말 이상한 여자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