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새가 먹는 거 아닌가요?”
남자의 이 한마디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결혼식장으로 들어가려는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와 내가 철저히 다른 세계라는 사실을.
내가 자란 시골집 앞에는 넓은 조 밭이 있었다. ‘꼭 좁쌀 같다’는 이 말이 다 표현하지 못할 만큼 조 알맹이는 작았다. 조가 익어갈 때면 조 이삭 하나에 얼마나 많은 낟알들이 달리는지 나는 감히 설명할 길이 없다. 보리나 벼 이삭에 달린 낟알의 수는 조 이삭 앞에 비길 바가 못된다. 하나의 조 이삭에는 무수한 낟알들이 사방으로 치열하고도 빽빽하게 매달려 있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고개가 늘어진 조이삭은 애처로워 보였다.
노랗게 익어가는 조 이삭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은 어른들만이 아니었다. 참새들이 얼마나 좁쌀을 좋아하는지! 이 참새떼를 내쫓는 것이 큰 숙제였다. 버려지는 옷가지들로 엉성하게 만들어진 허수아비로는 더 이상 참새떼를 속일 수가 없었다.
그 허술한 아비를 대신해 등장한 것이 깡통이었다. 아이들이 온 동네를 뒤져 버려진 깡통을 모았다. 밭 가운데 막대기를 박고 줄을 길게 연결해 깡통을 매달았다. 밭 어귀에서 그 줄을 힘껏 당겨 좌우로 흔들면 깡통들이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온 동네가 깨질듯한 그 소리는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다.
우리 밭에도 깡통을 매달았다. 나는 어머니의 부탁대로 학교가 끝나면 조 밭 어귀에서 온 힘을 다해 줄을 흔들었다. 그 요란한 소리에 조밭에 머리를 처박고 좁쌀을 까먹던 참새들이 화들짝 놀라 혼비백산 날아올랐다. 얼마나 정신없이 좁쌀을 까먹었는지 부리마다 노란 좁쌀 가루가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날마다 꼭 조밭에 들러 그 줄을 흔들었다. 그것은 참새떼를 혼쭐 내려는 주인의 마음보다는 깡통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정맞게 날아오르는 참새떼를 구경하는 재미 때문이었다. 참새떼가 노란 물결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오르면 어린 나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 노란 풍경은 봐도 봐도 놀라웠다.
그 시절 나는 참새떼를 혼쭐 내며 지켜낸 좁쌀을 먹으며 자랐다. 흰쌀을 찾아보기 힘든 노란 좁쌀 밥그릇. 그 알맹이들이 어찌나 작고 껄끄러운지 작은 입을 아무리 오물거려도 좁쌀은 잘 씹히지가 않았다. 그 거친 식감은 국이 없이는 삼킬 수가 없었다. 참새들은 맛나게 잘도 까먹던 그 좁쌀이 어린 나에게는 그토록 힘에 부치는 밥상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온 동네 참새들과 좁쌀을 나눠 먹으며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