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그는 모른다.

by 정미리

삶에 그늘 한점 없어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그의 손을 먼저 보게 된다. 길고 고운 손, 푸르스름한 핏줄이 훤히 비치는 무지하게 흰 손.

쨍한 햇빛, 비바람 한번 없이 온통 꽃동산에서 살았을 것 같은 삶이다.


부러울 뿐이다.


지난 한 해도 나는 몸이 아파 오르막길만 걷느라 온 마음이 굽이굽이 주름이 졌다. 미래에 엄청난 건강을 준다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미래의 행복이 현재를 견디게 한다는 약속은 모두에게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중에 우리는 얼마나 느끼며 살아갈까?

가파른 길, 돌부리 붙잡고 올라가는 삶 위로도 부어지는 기쁨이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고난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뜨거운 감정들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래서 신은 공평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병 온 친구는 내게 자신의 고단한 삶에 대한 긴 하소연을 쏟아놓다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우린 서로의 얼굴에 자라난 기미와 주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애틋한 연민이었다.


현재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검사 결과를 들으면 쪼그라들었던 몸과 마음이 꽃처럼 피어난다. 내일도 일상을 살 수 있다는 눈물 나게 기쁜 안도감이 들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써보지 않았을 큰돈을 내게 보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알 수 있는 마음. 돈이 왜 소중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내 손을 잡을 때면 일제히 비장해졌다. '힘내라'는 한마디는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누구에게나 마주해야 할 삶의 비장함이 있음을 알았다. 그 길을 손잡고 가자고 말하고 있었다. 오르막길은 서로 손 잡아 줘야 갈 수 있다는 걸 표정과 말과 돈으로 배우고 있었다.


아스팔트 구석, 보도블록 사이, 한 줌의 흙속에서 올라오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는 노래 가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난 것은 무엇이든 기어이 자라고, 누가 봐주지도 않아도 피어나고야 만다고 것. 내가 걷는 길 구석구석에서 증명하고 있었다. 절망과 함께 공존하는 희망이었다.


삶에 그늘 한점 없는 그 사람 너무 부러워하지 말자.

태풍이 지나간 자리 위로 또다시 쏟아지는 햇살을, 멈추지 않는 눈물을 수도꼭지 틀어 씻어내며 다시 말갛게 웃어 보이는 새 마음을 나는 알고 그는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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