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이지만 중국인은 아닙니다.

by 정미리

오후가 되자 직원 snezana가 왔다. 가게를 그녀에게 맡기고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우리 가게는 액세서리를 팔았지만 겨울이면 모자, 장갑, 목도리도 팔고 비가 오면 우산도 팔았다. 결국 잡화점인 셈이다.


오전 내내 목걸이와 피어싱 몇 개를 팔았을 뿐인데 피곤했다. 어떤 손님은 자신이 고른 플라스틱 진주구슬 목걸이를 나보고 걸어 달라고 했다. 플라스틱 구슬이었지만 그녀의 길고 흰 목에 걸린 구슬은 정말 진주 같았다. 어떤 젊은 손님은 자신의 배꼽에 피어싱을 달고는 어떠냐며 나에게 배를 내밀었다. 속으로는 '저걸 왜 할까?' 하면서도 '너무 이쁘네요'라고 말했다. 오전 내내 장사꾼의 칭찬과 감탄을 남발하느라 피곤했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몇 정거장쯤 가자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탔다. 천천히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굽은 허리가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는 노인이 아니라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자리를 찾아 계속 안으로 들어오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착한 마음보다도 몸에 밴 문화가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자리에 털썩 앉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니 내 기분도 좋았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몇 번을 더 고맙다고 하더니 버스에 탄 사람들이 다 들을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이 중국여자 보소, 이 늙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는 착한 중국여자 한번 보소”

할머니의 뉘앙스까지 고려한다면 대충 이런 느낌의 감탄이었다. ‘착한 중국여자’. 이 한마디에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다.


우리 눈에 영국인이나 미국인이나 다 똑같아 보이는 것처럼 그들 눈에도 모든 동양인은 중국인이었다.

내가 그 나라에서 가장 먼저 암기해서 가열하게 사용했던 말은 이랬다.

“나는 중국인이 아니에요, 한국인이에요 남한에서 왔어요” 그리고 이 말을 어린 자녀들에게도 맨 먼저 가르쳤다.


이곳 사람들은 생활용품의 90% 이상을 중국산을 쓰면서도 중국인은 무시했다. 가끔씩 누군가가 나를 중국인이라고 무시하면 성큼성큼 다가가 ‘난 한국인이야!’라고 말하며 따질때도 있었다. 외국인이 겁도 없이.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내 몸에 걸친 대부분이 중국에서 온 것이었다. 얼마 전 나이키 매장에서 산 운동화까지도.

무엇을 밝히고 싶어서 그렇게 난 국적에 열을 올렸던 걸까?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저 동양인일 뿐이라는 유럽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내가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참! 착한 중국여자’라고 말하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호의를 그저 호의로 받으려 해도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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