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세팅된 사람을 부모라고 불렀다.

by 정미리

내 친구 희와 수 그리고 나의 대화의 소재와 걱정과 자랑은 거이 똑같았다. 대체로 자녀에 관한 것이다.

늘 만나도 항상 반가운 친구 희와 수를 만났다. 늦게 결혼해 낳은 희의 막둥이 아들은 귀엽고 겁 없는 장난꾸러기였다. 항상 지친 엄마의 비타민이었다. 그렇게 귀엽기만 했던 아들이 어느 날 크게 사고를 쳤다.


아빠의 핸드폰으로 현질을 한 것이다. 소액결제도 여러 번 하니 거액이 돼버렸다. 놀람과 분노와 절망이 뒤범벅된 희는 자신이 한 짓이 뭔지도 모르고 자고 있는 초 3짜리 아들을 깨워 다구 쳤다. 몽둥이를 휘두리지 않았을 뿐 거이 그에 준하는 처벌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주범은 핸드폰이라며 스마트폰 욕을 같이 했다. 또 다른 친구 수는 시험기간에도 태평한 고 2 딸로 인해 나는 노는 것 밖에 관심이 없는 대학교 1학년 아들로 인해 서로 수다를 떨며 한숨을 쉬었다.


세르비아에 있을 때 고르다나(위층 이웃이자 가게 직원)는 나에게 이 속담을 자주 말했다.

“mail dete mala briga veliki dete velika briga”(작은 아이는 작은 걱정 큰 아이는 큰 걱정)


그 당시 나는 4살짜리 아들과 갓 태어난 딸을 키우며 독박 육아 중이었다. 툭하면 아프고 보채는 두 아이로 인해 너무 지쳤다. 반면 고르다나에게는 외동딸 마야가 있었다. 늦게 결혼해 어렵게 얻은 딸 마야는 대학생이 되자 밤마다 술과 클럽을 누비고 있었다. 어제도 집에 안 들어왔다고 내게 하소연을 했다. 30대의 한국엄마와 60대의 세르비아 엄마가 함께 자식고민을 나누고 있었다.


또 다른 직원 스네자나는 50대 후반인데 갑자기 손녀를 키우게 됐다. 결혼한 딸이 이혼 후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딸은 직장문제로 출장이 잦아 할머니가 키우게 된 것이다.


딱 부러진 성격의 스네자나는 사장보다 무서운 직원이었다. 내가 가게 구경을 간 첫날, 물건을 가리키며 이름을 말해 보라고 했었다. 그녀는 애순이는 아니었지만 관식이 같은 남편과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와 달리 30대 후반인 아들은 아직도 변변한 직장이 없었다. 가끔씩 가게로 와서 엄마에게 돈을 타가곤 했다. 그렇게 야무진 스네자나가 자식 때문에 속상하다며 어리숙한 나에게 하소연을 했다.


국경을 초원해 자식문제는 모든 부모의 고민이요 자랑이요 숙제였다. 시원하게 해치울 수도 없고 풀이과정도 없다. 이 세상 부모들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숙제를 계속 품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며칠 후 희와 수를 다시 만났다. 이번에도 희의 아들이 학원에서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희는 그야말로 아들을 족쳤다.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잘못했다고 했다. 그 날밤 잠자는 아들의 모습을

본 희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들로 인해 그 작은 얼굴이 다 닳을 때까지 쓰다듬고 싶었다고 한다.


이 풀 수 없는 숙제를 계속 품고 살아가는 이유가 보였다. 사실은 이미 세팅된 것이었다. 자식이 어떤 짓을 해도 용서가 되도록, 사랑할수밖에 없도록. 배 속에 아기를 품은 순간부터 이미 그렇게 세팅되어 버린 사람을 부모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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