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보다 백숙 2

by 정미리

시골의 밤은 깜깜하고 고요했다. 낮 동안 정신없이 놀던 우리 5남매는 초저녁부터 한방에 모여 잠에 빠졌다.


얼마나 깊은 밤이었을까? 어머니가 조용히 우리를 깨웠다. 잠에 빠져 눈도 뜨지 못하는 우리 입에 어머니는 뭔가를 밀어 넣었다. 늘 배고플 나이라 입에 들어온 건 뭐든지 씹고 봤다. 그런데 그것은 고기였다. 진한 육즙이 목을 타고 위장으로 내려가자 눈이 번쩍 뜨였다. 눈을 뜨니 반들반들 윤이 나는 닭고기가 백열등 불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고기의 맛을 본 우리는 본능적으로 손과 입을 벌렸다. 앞 다퉈 내미는 작은 손마다 어머니는 닭다리를 뜯어 주셨다. 어린 남동생의 손에도 여동생의 손에도, 모두의 손과 입에 고기가 들어갔다. 어머니는 김이 펄펄 나는 고기가 뜨겁지도 않은지, 닭다리를 뜯는 손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건 아침마다 들기름에 지져낸 계란프라이를 들고 잠깐 머뭇거리다 남동생 밥 위에만 올려주던 할머니의 손과는 달랐다.


닭을 몇 마리나 삶았는지 먹어도 먹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잠결에 먹어서 그런지 고기에서 유독 달콤한 맛이 났다. 부들부들한 고기를 결대로 찢으며 어머니는 어서 먹으라고 재촉하셨다. 긴장한 듯한 낮은 목소리로. 우리는 숨죽여 웃으며 행복하게 고기를 뜯었다. 닭고기의 기름으로 모두의 입술이 번들 거렸다. 여리고 붉은 입술 사이로 달콤한 고기 육즙과 행복한 웃음이 흘러내렸다.


다음날 아침이면 어젯밤 일이 꿈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몇 달에 한 번씩 잠자는 우리를 깨워 할머니 몰래 달콤한 닭고기를 먹였다. 한밤중에 만나는 은밀한 이 만찬은 우리에게 닭고기라면 이제 원이 없게 만들어 줬다.


내가 자라서 먹은 백숙에서는 그런 단맛이 나지 않았다. 그 밤에 먹었던 고기의 단맛은 분명 상상이나 밤의 감성에서 나온 맛이 아니었다. 진짜 달콤한 맛이었다. 그 단맛 나는 고기의 비밀은 어느 복날 푸짐하게 삶아진 백숙 앞에 앉은 어머니의 말속에서 밝혀졌다.


“너네 어릴 때는 돈이 없어서 오일장 가면 폐계만 사 왔는데.”

“폐계?”

“ 그걸 사다가 소주 놓고 삶아서”

" 뭐? 소주? 술 넣고 닭을 삶았다고?"

"그래야 고기가 보드라워져서 어린 너희들이 먹지, 그냥은 질겨서 못 먹지"


그 시절 깊은 밤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던 만찬은 이유도 과정도 알 수 없었지만, 조용조용 몰래 먹었던 그날의 푸짐한 닭고기는 꿈이 아니었다. 달달한 그 맛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알코올이 날아간 소주가 만들어낸 달콤한 살코기의 맛.


일생 알을 낳다 늙어버린 닭을 폐계라고 불렀다. 수고한 세월만큼 질겨진 그 고기는 일반 닭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했다. 그 싸고 질긴 고기에 소주를 얼마나 붓고 얼마나 오래 삶으면 그렇게 부들부들하고 단맛이 나는 고기가 되는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어린 딸들을 먹이기 위해 은밀하고도 조용하게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그 만찬은 준비했을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할머니가 잠든 밤, 조용히 큰 냄비를 곤로 위에 올려놓고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폐계를 삶았을 어머니. 깊은 밤이 되어서야 먹을 수 있었던 단맛 나는 그 고기의 이유와 과정을 알게 되니 순간 피곤하고 슬퍼졌다. 그러나 아들에게나 딸에게나 큼직한 닭다리를 뜯어주며 흐뭇해하던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우리의 미각은 우리의 기억과 함께 작동하는 게 아닐까? 나의 백숙 그릇 안에는 깊은 밤 백열등 아래서 함께 신나게 닭다리를 뜯었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행복했던 어머니가 있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나는 튀긴 닭보다 물에 빠진 닭이 더 맛있는 걸 보면 나의 미각은 그 밤의 기억 속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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