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온 천지에 알맹이가 들어차는 계절이었다. 밭에서는 청보리가 익어가고 바닷속에선 성게알이 여물었다. 그 시절 5월의 보리밭과 바다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것이 어린 나에게는 벅차고 힘든 노동이었기 때문이다.
봄이면 해녀들은 하루 종일 바닷속을 뒤져 성게를 잡았다. 날마다 해녀들의 망사리가 시커먼 성게로 가득 차니 성게씨가 마를 만도 한데 성게는 봄철 내내 잘도 잡혔다. 무엇보다 바다가 숨겨놓은 성게를 다 찾아낼 때까지 해녀들은 결코 지치지 않는 여자들이었다.
바다에서 나오는 엄마의 가득 찬 망사리를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으나 그 안이 시커먼 성게로 가득 차 있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망사리를 열면 시커먼 성게들이 독을 품은 긴 가시를 스멀스멀 세우며 어린 나를 위협했다.
엄마가 먼저 칼로 녀석의 배를 쩍 소리 나게 반으로 가르면 다음은 아이들 차례다. 성게를 깔 때는 고사리 같은 아이들 손이 제격이라며 엄마는 우리를 잘도 부려 먹었다. 언니와 나는 갯가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티스푼으로 반 토막 난 성게 뱃속을 박박 긁어 내장과 똥까지 싹 다 손바닥 위로 옮겨 놓았다.
살벌한 외형과는 다르게 성게알은 무척이나 여리고 가냘팠다. 그 귀한 알을 염치없이 휘감고 있는 시커먼 내장들과 똥을 살살 달래며 티스푼과 손가락으로 분리해 내면 그때서야 비로소 주홍빛 성게알을 얻을 수 있었다.
성게 손질 작업은 한 번 시작하면 2-3시간은 족히 걸렸다. 귀한 성게알 한 숟갈 얻는 동안 쪼그려 앉은 다리가 수시로 절여 콧등에 침을 몇 번이나 발랐는지 모른다. 성게알이 다치지 않아야 돈이 되기 때문에 엄마는 조심조심 빠르게 하라고 수시로 우리를 다그쳤다.
온몸을 배배 꼬며 겨우 성게를 다 까면 엄마는 마지막으로 깨끗한 바닷물로 성게알을 2-3번 샤워시켰다. 그러고 나면 녀석은 몰라보게 탐스런 주홍빛 꽃이 되었다. 바닷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속살이 알알이 살아서 탱글 거렸다. 온종일 수고한 해녀들의 눈엔 그건 알알이 차오르는 뭉칫돈이었다.
이 성게 손질이 가장 힘든 때는 겨울이었다. 그 귀한 몸을 고이 모셔야 해서 손이 시려도 장갑을 끼고 할 수가 없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에 성게를 까는 고사리 손이 다 얼었다. 그럴 때면 망사리 속에 세월 좋게 누워있는 녀석들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성게알 하나하나가 다 돈이니 그 고생을 해도 내 입속으로는 한 알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탱탱한 성게알을 한 숟갈 푹 떠서 한입 가득 먹는..... 그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이 노동에 동원된 모든 동네 아이들이 했을 상상. 깨끗이 단장된 성게알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