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을 열어야 하는 순간
전화기를 들어야 하는 순간
누군가를 마주해야 하는 순간, 그리고 내가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던 그 소식을 끝내 들어야 하는 순간 용기는 필요했다. 이렇게 사소한 작은 행동 앞에서 용기는 필요한 것이었다.
용기라는 단어가 풍기는 낯설고 무게감 느껴지는 투박함을 생각해 보면 용기는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가는 용사의 눈동자에나 어림 직한 용기는 평범한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몸이 아팠다. 몸이 아픈 것은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작은 것들마저도 조용히 내려놓게 했다. 아무런 욕심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물에 떠내려 가는 마른 나뭇잎처럼 살면 그래도 더 나빠지지는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기만 하라'는 주위의 말들을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매번 다시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단지 하나 쉬기만을 했다. 쉬기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무언가 한 가지만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뭔가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사과나무를 심는 일이다.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가 없는데, 줄기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텐데.... 무엇보다 사과가 열리는 모습은 상상만 해야 할 텐데... 그 사과가 빨갛게 익어가는 상상은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아프게 할 텐데... 나는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까?
1년 뒤의 삶. 한 달 뒤의 삶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이 사과나무를 심어야 할 때가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용사의 용기보다 더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두 사람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너무 젊은 사람과 아직은 젊은 사람의 부고소식이다. 마음이 아팠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문득 사과나무를 심고 싶었다. 줄기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고 붉게 익어가는 것은 온전히 상상만 할 각오를 해야 했다. 내가 어디까지 볼 수 있을지 만질 수 있을지 몰라도 실체인 사과나무를 심고 나머지는 상상만 하면서 살 각오를 해야 했다.
내가 심는 첫 번째 사과나무는 계속해서 이곳에 글을 쓰는 것이다. 절망도 희망도 없이 계속 쓰는 것, 용사의 용기를 갖고 이 사과나무를 심는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옷 같은 어색한 단어 용기를 꺼내본다.
갑옷을 입는 마음으로 떨리는 손에 든 창을 높이 쳐드는 마음으로 사과나무를 심는다. 그렇게 먼저 글을 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