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켜고 침대와 쇼파가 되어 기다리겠습니다.
추석 전날, 모두가 분주하고 들떠 있었다. 나 역시 그러했다. 아마 그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파트 주차장 화단에서 한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담배 한 개비를 급하게 태우는 남자를 봤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부담스러운 일을 해치우기 전 마지막 다짐을 하듯 급하고도 괴롭게 담배를 피웠다. 담배 맛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짧은 한 개비가 타들어가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내가 계단을 오르자 그도 따라 올라왔다. 4층까지 올라왔을 때 3층 현관문이 열리면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왔습니다. 저 왔습니다" 애를 쓰는 경쾌한 목소리였다.
가끔 병원 진료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제약회사 직원들을 본다. 누구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들은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의사의 심기를 살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새삼 버거운 일이 될수있음을 본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차라리 아무도 없었으면 할 때가 있다. 보여줄 뭔가가 없을 때, 내 손에 쥔 것이 초라할때 문을 열고 들어간 공간이 그저 깜깜한 어둠과 공기뿐이길 바란 적이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공간이 더 위로가 될때가 있다. 사람이 다 반가운 것은 아니기에 사람이 버거운 날이 있다.
짧은 3층 계단을 오르기 위해 더 짧은 담배 한 개비를 태우며 시간을 벌고 마음을 다잡는 젊은 남자와 의사를 만나야 하지만 차마 문을 열지 못하는 또다른 마음을 생각해 본다. 사람이 다 반가운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즐겁기만 할 것 같은 들뜬 내 마음이 어느 젊은이에게는 폭력이 된것만 같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를 하던 친구는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서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그 깜깜한 방에 들어가 스스로 불을 켜야 하는 시간이 너무 괴로웠다고 했다. 아무도 없는 어둠이 무서운것이 아니라 그 깜깜함이 지독하게 싫었다고 했다. 누군가가 먼저 들어가 불만 켜주고 갔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 그리운 것이었다.
오랜기간 몸이 아픈 나는 남들 앞에 내세울 무언가가 없어 작은 문도 열기가 망설여질때가 있다. 힘들게 여는 문안에는 차라리 아무도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다. 사람으로 괴롭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내 안으로 들어올 때 나는 불을 켜고 기다리는 편안한 침대이고 싶고 푹신한 소파이고 싶다. 내가 그런 공간에 기대어 쉬고 싶은 것처럼 누군가는 쉬고 싶어 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을 안다.
사람으로 괴롭고 사람으로 외로워하는가? 하는 김광석의 노래가사가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