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즐거움

by 정미리

어제 하루 종일 비가 오고 나니 오늘 아침은 온 세상이 말끔했다.

봄 햇살이 쨍하니 "이제 내 세상이구나" 하는 것 같았다.


자동차 수리 때문에 카센터에 갔다.

아침이라 한가했다.

경리일을 하고 계신 아줌마는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영화 속 대사들이 가만가만 내게 들려왔다.

언젠가 내가 본 적 있는 영화. 유명하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서 내가 봤던 영화였다.


초등학교 때 우연히 만났다 헤어진 주인공 남녀가 20대 중반에 서로에게 편지를 보내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그저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누는 편지가 영화의 대부분이었다.

그 편지를 읽는 소리 속에서 영화 장면들이 눈앞에 다시 펼쳐졌다.

그때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그들의 속마음이 보였다.


듣는다는 것이 참으로 편안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정이 잘 전달되다니.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내 귀가 열리는 것 같았다.


문득 듣는 즐거움을 생각해 보게 된다.

카센터 마당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아까워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이 연장을 다루는 소리 속에서도 여전히 편지 내용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상대방이 뿌듯한 하루를 살았으면 하는 그들의 바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눈으로 봤을 때보다 더 선명하게 그 마음들이 보였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서 뜬금없이 안부를 묻고 싶어질 만큼.


보이지 않아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정다운 일인지

얼마나 생생한 일인지

소리가 전달하는 감출 수 없는 진짜 속마음을

눈을 감고 들어보는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