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보낸 월요일의 검사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 정신없는 틈으로 침대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하얗고 앳된 그녀가 누워 있었다. 하나의 모근도 남아 있지 않은 동그란 민 머리 위로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매끈한 머리통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그녀에게 할당된 고통은 지금까지도 충분해 보이는데, 그녀는 또다시 침대에 누운 채로 맨 먼저 검사를 받아야 하나 보다.
눈물이 많을 것 같은 그녀의 맑은 눈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는 한눈에 봐도 훈남이었다. 큰 키에 파마끼가 여전한 단발머리. 아직까지도 근육이 불끈거리는 두 다리로 서 있는 그는 아마도 자신이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하얀 병원복에 내가 자주 봐왔던 약병들을 줄줄이 매달고 서 있는 모습을 볼 때 그도 이 두려움 속에 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장에 나가는 전사처럼 온 힘을 다해 두려움을 누르고 있는 그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녀와 내가 걸었던 그 길을 힘차게 따라올 그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잘생긴 그 얼굴을 바라본다.
39살이 되던 여름, 나는 첫 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어느 구석진 미용실을 찾아갔다. 숭덩숭덩 빠지는 머리카락을 차마 볼 수 없어 먼저 밀어버렸다. 그것은 내가 이 병 앞에 호기롭게 던진 도전장이었으나 이토록 두렵고 지리지리 한 싸움이 될지를 알지 못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 밤을 고통과 두려움 속에 갇히는 시간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내 몸이 서러워 우는 날도 많았다. 그렇게 지쳐 가던 어느 날 나는 병원 침대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쓴 것은 그저 내가 먹은 음식들과 그에 따른 컨디션의 변화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점차 꾹꾹 눌러놓았던 억울함으로 넘어갔다. 젊은 나이에 이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 그건 신과 세상 앞에 견딜 수 없는 억울함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부끄러움이었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과 함께 항암주사를 맞고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면 나의 젊음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살았으면 저렇게 젊은 나이에 몹쓸 병에......’ 아무도 말하지 않는 목소리들이 내 속에서 자꾸만 들렸다.
억울함과 부끄러움뿐이던 글쓰기가 어느 날 나와 같은 그들을 보게 했다. 손끝 발끝의 기운까지 다 끌어와 맹렬하게 암과 싸우며 기필코 만들어내는 그들의 희망을 보았다. 그건 하나의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기록하기 시작했다.
새벽 배를 타고 거제도에서 온 부부의 속삭임이 항암 주사실 커튼 뒤에서 들렸다. ‘마지막 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아내의 걱정이 문장 속에서 나의 걱정이 되었다.
“못 내려가면 서울서 하룻밤 자고 가면 되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에선 과한 애정을 넘어 느끼함 마저 묻어난다. 마치 행복한 새신랑처럼..... 아내가 어이없어 웃는다.
그들의 속삭임이 어찌나 다정한지 노트 안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아픈 아내의 얼굴을 다정하게 쓰다듬는 남편, 세월 속에 몇 백번은 담글 질 됐을 그 크고 두터운 손이 보이는 듯했다.
나는 이렇게 10년을 견디고 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다. 자라나는 것은 기쁘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제자리다. 내가 하는 일은 그저 견디는 것이다.
아픈 우리 앞에 주어진 시간들은 온통 견디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3년을 견딘 유충이 한 여름밤 매미가 되고 5년을 땅속에서 뿌리를 내려야 단단한 대나무가 된다. 견디는 시간 속에서 나의 마음은 자라고 있었다.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알아보고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하듯. 그 마음으로 보니 몸이든 마음이든 세상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 것들도 애틋하게 보게 된다.
아픈 우리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견디는 시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날마다 자라고 있다. 나와 함께 견디며 자라나는 그들이 사랑스럽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아름다움을 기록하지 않을 수가 없어 오늘도 나는 쓰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