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내게 던진 질문

by 정미리

병원을 가는 차 안에서 '한겨레 손바닥 문학상' 단편소설집을 읽었다.

그중에서 "경주에서의 1년"이란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모든 작품의 첫 장을 걷으면 의례 작가의 소개가 나온다.

어느 학교 출신인지, 어떤 문학상을 받았는지, 어떤 작품을 썼는지에 대한 소개.

그런데 이 글을 쓴 작가의 소개는 좀 달랐다.

작가의 신상에 대한 어떤 소개도 없이 그저 "사라지고 잊혀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몇 줄과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 줄 적고 있었다.

사진 속의 작가는 젊은 얼굴로 웃고 있었고 그녀의 출생연도 옆에는 사망연도가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

51년이란 생을 살다 간 것이다.


"경주에서의 1년"은 그녀의 자전적 소설이었다.

젊은 유방암 환자의 짧은 삶과 경험에 대한 기록이었다.


내가 30대 후반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던 과정 속에서 경험했던 일들,

병원침대에서 들었고 봐왔던 그 일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그녀의 글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를 위해 지인들이 보내줬던 수많은 응원과 걱정의 말들 속에서,

암세포를 단번에 죽일 수 있다는 수많은 동영상을 받아보며

느꼈던 무력감과 슬픔에 대한 우리들의 기록이었다.


"경주 힐링센터"에서 그녀는 60대 여성 환우들에게 맞추어진 암환자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젊은 유방암 환자로써 그녀가 느껴야 했던 이질감과 부끄러움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30대 후반에 나는 수술을 받고 힘든 항암치료를 끝내고 드디어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갔다.

그곳에는 치료를 기다리는 많은 할머니들과 아줌마들이 있었다.

그분들은 안쓰런 눈으로 내게 나이를 물었다.

내 젊은 나이가 그토록 부끄럽기는 처음이었다.

나이를 들은 할머니들은 연이어 나에게 한 마디씩 하셨다.

그날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멍이 들어가는 가슴을 숨겨야 했다.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하던 때였다.

빨리 늙어버리고 싶었다.

40대 중반에 재발이 됐을 때도 나는 여전히 젊었다.

젊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토록 젊은 나이에 이런 병에 걸린 이유는 따로 있다고 굳이 설명하고 싶었던 나의 부질없는 욕심

상대를 알지 못하지만 퍼붓게 되는 원망과 그 후에 밀려오는 깊은 슬픔은 그녀와 나의 것이었다.

그리고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우린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이런 힘든 치료를 견디며 몸과 마음이 지치도록 싸우며 얻어낸 그 얼마간의 삶을 통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녀가 내게 질문하고 있었다.

어떠한 삶을 살고 싶기에 이처럼 악착같이 생을 붙잡고 있는지 묻고 있었다.


병원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그 대답을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갖고 싶은 생명, 그 보이지 않는 실체는 잡기 위해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달리지만 정작 그 대답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


생각해 봐야 한다.

이처럼 간절하게 얻은 삶을 통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