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에게

by 정미리

항암치료를 받아 피곤하니 비행기 안에서 잠이 들었다.

어스름한 저녁, 제주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공항터미널까지는 버스로 간다는 방송도 연이어 들렸다.


공항 터미널로 가는 버스에 올라 빈자리에 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점점 버스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어느 엄마와 아이가 내 자리 앞에 섰다. 4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다.

엄마가 "꼭 잡아" 하고 말하자 아이는 의자옆에 있는 긴 안전봉을 온몸으로 끌어 앉았다.


내가 일어나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하자 아이는 맑은 눈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자리에 앉은 아이가 힐끔힐끔 나를 본다.

엄마가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해야지" 하자 아이는 부끄러운 듯 "감사합니다"하고 말한다.

참 맑은 눈을 가진 아이다.

정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아이다.


사람의 눈동자가 어쩌면 저렇게 까맣고 맑게 빛날 수 있을까?

깜깜한 버스 안에서 아이의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이 났다.

어떤 그늘도 없는, 조금의 그림자도 서리지 않는 맑고 검은 눈동자

태초의 눈동자 같았다.


아이는 그 까만 눈동자를 사방팔방으로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제주공항의 밤풍경을 하나하나 탐구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런 아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아이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쉬지 않고 질문했다.

'밤바다에 켜진 오징어 배 불빛을 보며'

'이제 막 도착한 커다란 비행기에 보며'

'짐을 싣고 바쁘게 움직이는 차을 보며'

'그리고 이곳이 제주도가 맞는지에 대해'

엄마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름대로 정성껏 대답을 해줬다.

엄마도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행복하게 애쓰고 있음이 보였다.


연신 쓰다듬는 엄마의 손길을 받고 자라서

아이는 저렇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다정한 설명을 듣고 자란 아이의 눈동자가 어떻게 빛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야! 이 밤을 잊지 말아, 이 밤에 네가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라'하는 말이 내 마음에서 올라왔다.

설명하는 엄마도 듣는 아이도 바라보는 나도 다 같이 행복한 저녁이었다.


이제는 다 자라 버린 내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치열하고 힘들고 바쁘던 시절, 그래도 행복했던, 내가 젊은 엄마였던 그때가 생각났다.

나도 저랬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아이들도 저렇게 맑고 빛나는 눈동자로 세상을 살길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마음으로 달려가길

이제 늙어버린 엄마가 멀리서 응원해 본다.

얘들아! 엄마가 여전히 너희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음을 잊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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