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작은 담요를 덮는 것과 같다"
짧은 담요로 발을 덮으면 어깨가 시리고 어깨를 덮으면 발이 시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삶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긴 담요를 가진 남자를 만났고 그와 결혼했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길어 보였던 담요도 키가 큰 그에게는 짧았다.
그의 삶도 어깨가 시리고 발이 시린 것이었다.
내가 좋을 때면 나는 내 짧은 담요로 그의 발을 덮어줬다. 어깨를 덮어줬다.
그도 자주 나의 어깨와 발을 따뜻하게 덮어줬다.
그가 나에게 담요를 덮어줄 때면 나는 따뜻했고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내 담요로 그를 덮어줄 때면 그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더 이상 시린 데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담요가 짧으니 그의 담요를 잡아당겼다.
그도 그 긴 다리가 시리니 내 담요를 잡아당겼다.
서로의 담요를 당겨 자신의 시린 데를 먼저 덮었다.
내 발 시린 게 우선이고 내 어깨가 시리고 아프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중년의 부부가 되어갔다.
별도봉 둘레길을 돌다 걸음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부부를 보았다.
천천히 봄 풍경을 보며 두런두런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모델이 돈과 편안함보다 저런 다정함이라는 젊은이들의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이 시대가 여전히 따뜻하게 느껴진다.
저 부부는 어떻게 짧은 담요로 평생을 함께 살았을까 생각해 봤다.
신혼 때는 내 어깨가 조금 시려도 그를 덮어주고 싶고 그가 행복하면 내 발 시린 것도 몰랐다.
그러나 삶이란 담요는 원래부터 둘 다 덮기에는 짧은 법.
다정한 노부부를 보며 문득 깨닫게 된다.
"저들은 담요로 서로를 덮어주며 산 게 아니구나"
할아버지의 어깨가 시리면 할머니가 손으로 덮어주고
할머니의 발이 시리면 할아버지가 발로 덮어주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짧은 담요를 잡아당기다 그들은 손으로 발로 서로를 덮어주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이것이 저부부가 살아가는 방법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우린 모두 짧은 담요를 들고 이 세상에 나왔다.
그러니 담요를 덮어주던 마음이 식으면 이제 손으로 발로 덮어주며 살아야 하는 거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할머니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손으로 발로 덮어주며 사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린 짧은 담요를 들고 이 세상에 태어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