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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Dec 04. 2021

층간소음 헛다리 짚기

안들린다 안들려

쿵쿵쿵쿵


천장에서 쿵쿵 거리며 뭔가를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오전 8시. 하아... 한숨이 나왔다. 


윗집에는 네 살가량의 어린아이가 있다. 그리고 하필이면 아이의 놀이방이 내 방과 위치가 같다. 어린아이란 원래 잠이 없는 존재인지 여섯 시에도 일곱 시에도 우다다다 뛰며 장난감을 굴리고 떨어트리기 일쑤여서 나는 침대에 누워서 소리를 들으며 또 시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들어보니 소리가 규칙적이다. 일정한 박자와 힘의 강도가 느껴지는 쿵쿵쿵 소리.

그럼 주방에서 마늘이라도 빻는 건가?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부지런한 안주인이 일곱 시부터 마늘을 빻은 일이. 그렇다면 곧 멈추겠지. 하지만 소리는 조금 작아졌다 다시 커졌다 하는 변화가 있을 뿐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도록 멈출 줄을 몰랐.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머릿속에서도 쿵쿵쿵쿵 두통이 몰려왔다.


보통 이런 층간소음 문제는 남편에게 해결을 넘기는데 이유는 아파트 단톡방에 남편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남편한테 말을 할까 했지만 시계를 보니 9시 40분, 업무로 바쁠 시간이었다. 

한참을 더 기다렸다. 시곗 바늘이 11시에 가까워질 무렵, 이 정도면 많이 참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윗집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아주 공손하게, 지금 하시는 일이 언제쯤 끝날 예정인지만 물어보고 올 생각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쿵쿵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계단을 올라 코너를 딱 돌았는데 무슨 일인지 윗집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고 온갖 짐이 잔뜩 나와 있었다.

'가구라도 새로 들여와서 설치하나?'

살금살금 걸어 문 앞으로 갔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인 장면은 현관에 앉아 아이 신발을 신기고 있는 아이 엄마의 모습이었다. 당연히 윗집에서 무슨 일을 벌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서 나는 그만 얼음이 되었고 나의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친 윗집 여자가 !  외치듯 말했다.

저희 아니에요


그 말에 다시 돌아보니 복도에 나와 있는 건 짐가방, 아이 유모차, 장난감들이다. 아이를 데리고 어디 멀리 나가려던 참인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렸.

"아, 네에;; 어디서 쿵쿵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요."

쭈굴쭈굴해져 대답하는 나를 올려다보는 윗집 여자의 표정이 뭐랄까. 마치 진상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직원의 얼굴처럼, 애써 미소는 짓고 있는데 짜증을 참고 있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여 나는 그만 움찔 쫄아버리고 말았다.


조금만 참을 걸. 그동안은 잘만 참았으면서 왜 하필이면 오늘, 굳이, 올라갔을까. 근원을 알 수 없는 소리에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가는데 그 와중에 위층에 올라간 것이 부끄럽고 미안해 이불킥을 퍽퍽 날려댔다.

지금까지 층간소음에 시달릴 때마다 윗집이 범인이라고 생각해 천장을 향해 살벌한 저주를 쏘아댔었는데  그게 모두 윗집 탓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미안해서 어쩌나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시가 넘었고 그제야 정체불명의 쿵쿵쿵 소리가 그쳤다.


출근하면서 남편에게 오전에 있었던 일을 톡으로 알렸고 그랬더니 남편에게서 금방 답톡이 왔다. 

 

그거 2층 공사 소리야



맙소사. 2층이면 우리 집과 꽤 먼 거리인데 어쩜 그렇게 코앞에서 나는 소리 같았는지. 생각지도 못한 층간소음의 정체에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가 나를 올려다보던 윗집 여자의 표정이 떠오르자 다시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를 뭐라고 생각했을까.


밀려오는 민망함에 집을 어떻게 지었길래 이렇게 층간소음이 심하냐며 건설사를 탓했다가 왜 그 집은 걸핏하면 공사냐며 2층 사람들을 탓했다가 공사 소식을 자기만 알고 나한테는 말해주지 않았다며 남편을 탓했다. 그러게 평소에 조심 좀 해주지, 이게 다 새벽까지 사람들을 불러다 술파티를 벌이던 전적 때문이라고 지난일까지 꺼내어 윗집을 탓했다가 끝내는 그 몇 시간을 참지 못한 나의 예민함을 탓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일을 하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소화되지 못한 음식 덩어리가 명치를 콱 틀어막은 기분이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자니 바로 아래층 아저씨가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서 도둑이 제 발 저린 심정으로 묻지도 않았는데 이실직고를 했다.


"혹시 저희 집 때문에 시끄럽지는 않으세요? 제가 퇴근이 늦어서 밤늦게 화장실을 쓰기도 하고요. 조심한다고 하는데 제가 조심성이 없어서요."

"어이구 전혀요. 위에 사람이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합니다. 전혀 안 시끄러워요."

"그래도 저희 때문에 시끄러우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한사코 아니라고 손을 저은  후 아랫집 아저씨가 내리고 나니 엘리베이터 안에는 나와 나의 부끄러운 마음만 덩그러니 남았다.


공동주택에서의 최대 난제는 층간 소음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소음의 기준도 모호하고 발원지도 모호하고 누구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 있어 그 경계도 모호하다는 점에서 해결이 어려운 문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나는 오전 내내 층간소음에 시달렸지만 섣부른 오해로  딸아이와 외출하는 이웃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으니  피해자의 입장에서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어 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체념이든 이해든, 어느 정도의 소음은 일상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나도 아는데... 그런데도 간장종지 같은 얄팍한 심보가 자꾸만  평정심을 잃고 출렁거리고 마는 거다.


고릿적에는 친정부모가 시집가는 딸에게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으로 살라고 당부했다던 나는 결혼하고 9 년 동안 눈 똑바로 뜨고 할 말 다하는 겁 없는 며느리로 살았다.

대신에 공동주택 거주자로서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도 같다. 이제부터라도 귀는 살짝 닫고 대신에 마음을 조금 더 크게 열어 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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