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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판다 Sep 05. 2022

나의 이름은

재발급 신청을 했던 새 주민등록증을 방금 전 받아왔다. 이것으로 장장 4개월에 걸친 개명 절차가 모두 끝이 났다.


십 년도 훨씬 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 1번은 "개명"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바람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지금 이름이 뭐가 어떻냐거나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라고 했다. 가족들은 내가 지금의 촌스럽고 흔해 빠진 이름이 싫어서 그런다며 가볍게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빠가 옥편을 펼쳐 놓고 지었다는 내 이름은 80년대에 태어난 여자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태어난 해에 그 이름이 더 유행이었던지 학창 시절 내내 같은 반에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들이 꼭 한 두 명은 더 있었다.

그렇지만 결코 이런 이유로 개명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명찰을 깜빡하고 나온 날, 교문 앞에서 친구의 명찰을 빌린 경험이 있으신가? 나는 그럴 때면 명찰을 겉으로 다 꺼내놓지 않고 가슴 앞주머니 속에 살짝 걸쳐놓았다. 선도부는 명찰의 유무만을 살필 뿐 이름의 진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도 당당히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나는 꼭 그때의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남의 이름을 빌려 달고 사람들 사이를 걷는 어색한 기분으로. 분명 내 이름인데도 글자 두 개가 도통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친구들도 내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일이 드물었다. 만약 내 이름이 김여시라면 성과 가운데 글자를 붙여서 '김여야' 이런 식으로 부를 때가 훨씬 많았는데 두 명이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반이 바뀌고 학교가 바뀌어도 똑같았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왜 나를 그렇게 부르게 되는지 자기들도 모르겠다고 했다. 친구들  무리에서 그런 식으로 불리는 건 나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직장동료들과 재미 삼아 작명 어플로 이름 풀이를 해보았는데 내 사주와 이름의 궁합이 최악으로 풀이되었다.

드디어 개명을 할 명분이 생긴 것이.

이름이 나쁘다 하니 그제야 가족들도 맘대로 하라며 더는 반대하지 않았작명을 잘한다는 곳을 수소문한 끝에 올봄 철학관 한 곳을 찾았다. 약 서너 시간에 걸쳐 이름과 사주 풀이, 그리고 상담을 하고 며칠 후에 이름들을 몇 개 추천받았다. 그중에서 나에게 가장 좋다는 이름으로 개명 신청을 했다.




스무 살 무렵에 호주의 한 원주민 부족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들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짓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잘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그와 관련한 이름을 자기 자신이 짓는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이름이란 무릇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새 이름이 호주 원주민들처럼 직관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전의 이름보다 훨씬 더 나에게 어울린다고 느낀다.  다행히 개명을 반대했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반응이 좋다.

자, 이제 내 이름이 제대로 새겨진 명찰을 달았으니 자신있게 당당히 걸어 볼까?언제든 물어보시라.


나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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