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에 연기가 나는 집

by 조민규

2026년 새해가 시작된 지 2달이 된 지금 벌써부터 부동산 뉴스는 작년과 같이 ‘아파트 가격 전망’ , ‘상승세 불안한 서울 집값‘ 등의 제목들로 일찌감치 채워져 있다. 부동산 가치가 개인의 경제적 안위와 투자와 결부되다 보니 국민 대부분의 관심사가 자연스레 부동산의 자산적 가치에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때문인지, 어느새 우리 사회에는 어느 지역과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개인의 부와 여유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되어있다. 현대의 우리에게 있어 ‘집’이란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경제적 소득 및 수준을 소개하는 명함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렇다면 먼 옛날, 사람들은 ‘집’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home’의 어원


(root) (Old English) (Modern English)

kei —> ham —> home



어근 ‘kei’ : 눕다, 휴식하다

ham : 마을, 영토

home : 집


누워 쉴 수 있는 곳


ham’의 어근이 되는 ‘kei’는 본래 ’ 눕다, 휴식하다 ‘와 같은 물리적 행위를 표현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차츰 ’kei‘는 물리적 행위가 아닌 공간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들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고 고대 영어에 이르러 ‘정착지’, ‘영토’, ‘마을’과 같은 개인 또는 집단이 머무르는 공간을 뜻하는 ‘ham’의 어근이 되었다. 그렇다면 마을을 뜻하는 ‘ham’이 어떻게 집을 의미하는 ’home’으로 발전하게 된 것일까, 과거에는 개인이 속한 공동체(마을)가 삶의 기반이자 '안식처'인 경향이 컸지만 사회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은 마을 전체보다는 가족단위의 거주 공간을 더 핵심적인 안식처로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home’의 어원은 ‘편히 누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정서적 안식을 내포하고 있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서적 안정을 주는 공간이 마을에서 집으로 변환되었기 때문에 ’ 마을‘을 뜻하는 ’ham‘이 ’ 집’을 의미하는 ‘home’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이 가지고 있던 정서적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마을은 ‘고향’이라는 단어로 우리 개개인에게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는 때때로 고향을 두고 집이라 바꾸어 부르기도 한다. 이렇듯 ‘집’은 ‘위험을 경계할 필요 없이 편히 누울 수 있는 곳’ , ‘잠시 생활의 무게를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확고히 하고 있다.


돌아갈 수 있는 곳, 돌아가고 싶은 곳


현대의 우리는 역세권, 학세권, 숲세권 등 주거 지역의 입지 조건을 묘사하는 독특한 단어들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 단어들은 모두 집의 자산적 가치와 생활의 편의를 강조하는 단어들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단순히 교통의 편의, 우수한 학군, 여가 시설들을 갖춘 곳을 좋은 집으로 정의하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주거 공간은 이상적일 만큼 좋은 집이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주거 조건에 몰두한 나머지 ‘’이 품고 있는 속 뜻을 조금은 잊고 있던 것이 아닐까. 아무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일지라도 그곳에서 맘 편히 쉴 수 없고, 잠들 수 없다면,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 쉼‘이 필요할 때 떠오르는 곳, 지친 하루를 뒤로 하고 돌아갈 수 있는 곳,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곳이 우리에게 ’ 집‘으로서 더 적합한 공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좋은 집이란, ’ 살기에 좋은 곳‘이 아닌 ’ 살아가는 것이 좋은 곳‘이 아닐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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