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굴레

by 조민규

끊기지 않는 실타래와 같은 것


‘보릿고개’ , ‘초근목피’ , ‘춘궁기’ 등과 같이 우리에게는 빈곤한 시대의 궁핍과 가난을 빗대는 표현들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부유해진 지금에선 가난을 빗대는 그러한 표현들도 이제는 소설이나 수필에서 볼 법한 먼 시절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 표현들을 더는 우리의 삶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하여 그 표현들이 가리키고 있는 하나의 단어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로 ‘가난’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많은 가난과 빈곤이 존재하고 있다. 뉴스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불우 이웃’이라는 가난의 대체어를 쉽사리 발견할 수 있으며 ‘부익부 빈익빈’ , ‘빈부격차’ 등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가난’을 대체하는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가난’이라는 녀석은 적어지거나 사라진 것이 아닌 시대에 발맞춰 자신의 ‘이름‘을 계속 바꾸어 왔을 뿐인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된 가난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미약할지라도 ‘가난’의 ‘속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Poor’의 어원


(Latin) (Old French)

pauper —> poure —> poor


pauper : 부유하지 않은, (생산력이) 적은

poure : 가난한, 빈약한, 보잘것없는

poor : (돈)이 없는, 여유가 없는, 품질이 낮은


가난의 ‘발전’


위의 설명과 같이 라틴어에서의 ‘가난’은 재물을 소유하고 있는 ‘정도’와 땅이 소출을 내는 ‘생산량’과 같은 물질의 ‘’에 초점을 맞춘 단어였다. 그러나 (구) 프랑스어에서 ‘가난’은 그 의미를 확장하여 눈에 보이는 물질의 양뿐만이 아닌 ‘빈약한’ , ‘보잘것없는’이라는 표현과 같이 ‘사람’의 상태를 묘사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중세 영어를 거쳐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poor’는 조금의 확장을 더해 ‘사람’뿐만이 아닌 ‘사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일련의 확장들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소유물이 적은 사람들은 사회에서 보다 어려운 환경을 살아가야만 했고, 어려운 환경은 그들을 사회가 볼 수 없는 그늘로 인도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늘을 모르는 이들의 눈에 가난한 이들의 그늘진 모습은 보잘것없거나 빈약해 보이기 쉬웠을 것이다. 나아가 ‘부족함’이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는 ‘가난’은 제품의 ‘하자‘와 ’ 결함’을 직관적이면서도 쉽게 묘사하기 적합하다. 이와 같이 ‘가난’의 확장은 부유의 ’정도‘에서부터 사람과 사물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사용적 범위를 발전시켜 왔다.


가난의 ‘퇴보’


지금은 과거에 비해 소위 ‘의식주’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가난’이 자신의 의미를 넓혀가는 동안 시대도 거듭된 발전을 이루어 왔고 발전이 거듭될수록 ‘가난’을 부분적으로 줄이고 그것을 방지하는 많은 대책들과 실용적인 방안들이 만들어져 왔다. 다시 말해, 가난이 자신의 의미를 발전시키는 동안 사회는 가난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가난이 사회의 발전과 함께 퇴보한 것이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까, 가난이 줄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가난’의 의미는 우리에게 남아 가치를 판단하는 언어로 자리 잡고 있으니 말이다. 가난은 여전히 부족한 것, 질이 낮은 것, 보잘것없는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그 결과 가난은 개인의 상태가 아닌 ‘평가’가 되었고, 삶의 조건이라기보다 낙인으로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그런 논지에서 가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발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에게는 확장된 가난의 의미를 다시 원래의 단계로 돌려놓는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가난을 상태와 가치가 아닌 단순한 ‘양’과 ‘정도’에 놓는 노력말이다. 어찌 보면 가난의 ‘속성’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결정에 따라 바뀌는 것 아닐까.

월요일 연재
이전 04화행복이라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