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INTRO 고양이 같은 남자와 산다는 것
개는 사람과 비슷하다. -하지만 고양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동물이다. 사회적이지도 않고, 일시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위계질서를 따르지도 않는다. 완전히 길들여지지도 않는다. 재롱을 부리지도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친금감을 표시한다. 개는 주인 말을 잘 따르지만, 고양이는 스스로 결정한다. 고양이는 자기만의 이유로 인간과 자발적으로 교감하는 듯하다. 내가 보기에 고양이는 자연 그 자체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존재다. 인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느낌마저 든다.
12가지 인생의 법칙 by 조던 피터슨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 中
그가 동물이라면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 고양이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고양이.
탐험적이고 호기심이 넘치고 순수하리만치 단순하면서 동시에 특정 면에서는 원하는 바가 뚜렷하고 자기 멋대로인 면이 분명히 있는 그. 내가 사라지면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올지 모르지만, 일상에선 나 없이도 혼자서 너무 잘 지내는 그.
조던 피터슨 교수의 책을 집어 들고 마지막 챕터 '길에서 고양이와 마주치면 쓰다듬어 주어라'를 읽어 가면서 피하려고 해도 자꾸만 고양이의 모습이 아닌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몽실몽실 떠올랐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글로 자세하게- 그것도 정확하게 묘사한 구절을 찾았을 때의 기쁨이란 이런 거겠지.
나는 웅이와 연애하며 함께 먹을 것을 나눠먹고, 인생의 고민을 공유하고, 같이 잠자고 함께 눈을 뜨고 세상 곳곳을 탐험하며 살고 있다. 비혼주의자도 그렇다고 열렬한 연애주의자도 아니었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면 그리고 그 타이밍에 옆에 나와 맞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이니, 출산이니- 그런 것들을 자연스레 겪으면서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신이 있다면 나에게는 그런 기회보다는 좀 더 다채로운 다른 길을 권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를 만나 연애를 하며 2년 정도는 전 세계 12개국을 함께 여행하며 이 시기의 반정도는 외국에서 살았고 (아일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호주, 독일, 태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필리핀, 멕시코), 여행을 돌고 돌다 우리의 최종 정착지는 현재 미국이다. 결혼이란 형식적인 절차 이전에 그와 함께 오랜 시간 붙어 다니며 여행하며 먹고 자고 일하고 생활해 보는 시간들이 있었고- 그것도 한 장소가 아닌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나라에서 이 모든 걸 겪다 보니 막상 결혼이란 단어 자체는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큰 골칫거리나 사건 사고 앞에서의 고민은 이렇게 계속 '함께 지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만남에 국한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방황은 그와 함께 한 4년이 흐른 지금, '관계의 책임감'이란 단어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게 되었다. 그와 나의 사이는 투명한 유리막 같은 존재라서 조금만 흔들려도 상처받고 깨질지 모르지만, 공기 한 방울 들어올 틈 없이 촘촘히 메워져 있어 우리 둘만이 서로 알고 느끼고 공유하는 것들이 4년의 시간과 함께 농축되어 있다. 이 시간과 경험들을 기억하기 위해, 정확히는 내가 웅이를 만나 살면서 느끼는 잔잔한 생각의 흐름들을 놓치기 않고 다시 곱씹기 위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보려 한다.
부디,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있는, 혹은 그 관계의 출발선에 놓인 누군가에게 작은 흥미 혹은 어떠한 생각거리, 나아가 잊고지낸 감성을 던져주는 글이 되어 보길 희망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될 웅이에게도 소소한 웃음거리를 던져주는 글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