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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집사 Jan 29. 2024

Ep 01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Ep 01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제게 딱지와 구슬을 주신 분은 당신이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도 바로 당신이셨습니다. 요즘도 전 가끔 딱지와 구슬을 나눠주곤 합니다. 왜냐면 사랑이 없는 인생은 별로 위대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by  J.M. 바스콘셀로스            


 


나 혼자 무언가를 오랫동안 만들거나 정리를 할 일이 생기면 가끔씩 오디오 북을 듣는다. 엄청난 집중과 생각을 요하는 일이 아니면 가끔씩 오디오북을 듣는 게 기분전환이 되어 좋다. 밀리의 서재에 나오는 '하루 한 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명작 읽기'는 한 챕터당 한 권의 명작 소설을 10분 내외로 총 13편의 명작 소설을 요약해서 들려준다. 그중 여섯 번째 이야기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나온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브라질 작가 J.M. 바스콘셀로스가 1968년에 펴낸 책으로 5살 꼬마 아이인 제제의 성장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오디오 북을 듣다 보니 기억 저편 십 대 어느 때인가 이 책을 그림책으로 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초반에 잠깐 들려주는 작가가 글을 쓰는 방식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고 내용 역시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도 가슴이 뭉클한 걸 보면 명작은 역시 명작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오디오 북을 덮고도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 계속 맴돌던 한 구절이 있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아이들은 대게 아직 어리숙하고 사회 경험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본능적으로 본인의 감정에 충실하다. 먹고 싶거나, 자고 싶거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리적이고, 기본적인 욕구가 어른이 비해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타인의 눈치나 시선을 받지 않고 행동하는 그 순수함 때문에 아이들은 그 자체로 빛나지 않나 싶다.


웅이가 나를 만나기 한참 전 20대 초반이었을까 싱글일 때의 일이다. 학교 친구들 남녀가 많이들 모이는 자리였다고 한다. 술게임 비슷한 것을 했는데 진 것과 더해 여차 해서 친구들이 이끄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 모임 자리에서 어떤 한 여자 아이와 '오늘부터 1일'하며 사귀게 된 사이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서 그날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모임 자리의 분위기에, 낯선 여자 아이랑 원하지도 않게 사귀게 된 게 영 맘이 불편했던 웅이.


단걸음에 이른 아침부터 '어제부터 1일이 시작된 그 여자 아이 '의 집으로 대끔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서는 헐떡이는 숨과 함께 그 여자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고서는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헤어지자!'


이 말 한마디를 툭 던지고서는 웅이는 그 자리를 부랴부랴 도망치듯이 빠져나왔다고 한다.


나는 웅이가 들려주는 이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서는 배를 움켜잡고 깔깔 웃으며 박장대소를 했다. 우선 술자리에서 장난 비슷하게 친구들이 '사귀어라! 사귀어라!' 외친 것 때문에 다음 날 불편한 마음으로 눈이 떠질 수 있다. 그렇지만 굳이 그 여자애의 집으로 달려가 '헤어지자'는 말을 결국 내뱉고야 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 여자아이는 그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잊은 채 편하게 늦잠을 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웅이는 그런 사람이다.

자기 맘이 내키지 않는 행동을 어떤 부분에서는 무시하고 넘어가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정석처럼 바로 잡고 본인의 맘을 평온하게 돌려놓는다. 이래서야 어쨌든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의 행동을 동물분석학자처럼 탐구하고 지켜보며 산다. 관찰하는 재미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이 순진하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순수함이 겉으로 드러나는 마음과 속뜻이 일치하는 숨김이 없는 진실되고 맑은 마음이라면, 순진한 마음은 착하고 순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도 순진하다면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의미로도 많이 해석된다.


어른이 된 우리들이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 동물들을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는 그 모든 이유는 그들이 우리가 살면서 잃고 닳아 버린 맑고 순진했던 감정들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혹은 타인으로 인해 감정이 다치더라도 그들로부터 치유를 받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한 친절한 사람보다 퉁명하더라도 솔직한 사람이 백배 낫다'는 글귀를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인생의 짧고 긴 사람들에 대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이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렇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겪어 보며, 상처받은 내 너덜너덜해지고 위축된 맘은 웅이를 찾는다. 나는 웅이에게서 정말 많은 위안을 받는다.


웅이의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행동들, 장난칠 때 가장 행복해 보이는 그의 미소, 그리고 그 깊은 이면에 자리한 순진하고 단순한 마음에 내 마음은 다시 따뜻한 솜이불에 덮인 듯 녹아내린다.  


웅이가 내게 사랑스러운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도 그가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자리에서 듣게 되는 흔한 질문인 ‘웅이의 어떤 점이 좋아서 만나요?’에 나는 한결같이 대답할 수 있다.


‘웅이는 내가 만나왔던 그 어떤 사람보다 숨김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의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말과 행동이 그의 진심입니다.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사람이고, 숨기기를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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