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쓸까
쿠팡플레이가 부분 무료화 되었다. 광고만 보면 되는 쿠플을 통해, 꽤 오래전 방영됐던 '안나'를 보게 됐다. 수지가 주연을 맡았고, 꽤 화제가 됐던 작품이라 언젠가 보긴 해야지 하고 넘겨왔던 드라마다. 생각보다 몰입감이 있었다.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진 않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끝까지 보게 되는 드라마였다.
안나의 본명은 ‘이유미’다.
유미는 유복하지 않은 집에서 자란다. 아버지는 양복 재단사, 어머니는 청각장애인. 어느 날 유미의 삶에 특별한 손님이 찾아온다. 외국인 부부.
그 부인의 정체가 이상하다. 다이애나비의 사촌이라며 허풍을 떨고 다니는데, 남편조차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냐"고 화를 낸다.
하지만 부인은 말한다.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걸 견딜 수가 없어.”
그리고 유미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떠난다. “항상 포커페이스. 절대 감정을 들키지 마.”
그 말이 이상하게도 유미의 삶에 깊게 남은 것 같다.
유미는 똑똑했고, 공부도 곧잘 했다. 연애도 했다. 문제는 상대가 학교 선생님이었다는 점.
결국 스캔들이 터지고 유미만 전학을 가게 됐다. 선생님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은 채.
그 뒤로 유미는 수능도 망치고, 부모님께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하숙집 언니에게는 거짓말로 명문대생인 척을 한다.
그 작은 거짓말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말 그대로 ‘끝없이’ 이어진다.
유학을 꿈꾸다 들통나고, 온갖 알바를 전전하다가 부잣집 회사에 취직하고, 멸시를 견디다가 마침내 그 부잣집 딸의 신분을 훔친다. 그리고 이안나로 개명한다.
그 이름으로 교수가 되고, 기업가에 시집을 가고, 시장 부인까지 된다.
남편은 이 모든 걸 알고도 이용한다.
쓸모가 없어진 순간, 유미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한다.
그래서 유미는 그를 죽인다.
마지막에 유미는 이렇게 말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견디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생각했다.
유미는 통쾌했을까?
진심으로 만족했을까?
그녀가 들었던 멸시의 말들을, 나중엔 본인이 낮은 사람에게 똑같이 말한다.
그 장면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유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싫어했던 사람의 얼굴을 닮아갔다.
유미가 바란 건 성공일까, 복수일까, 혹은 그냥 생존이었을까.
이 드라마를 보며 떠오른 현실도 있다.
거짓 경력을 내세우며 책을 출간하고, 결국 들통나자 세상을 떠난 저자.
유미의 말처럼, 사람은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
왜 그럴까.
일기장조차 솔직할 수 없는 이유는 뭘까.
세상이 그렇게 만든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선택한 걸까.
거짓말은 쉽고, 솔직함은 어렵다.
나도 가끔 ‘잘 살아보이기 위한 말들’을 무심히 흘리곤 한다.
우리는 때로, 들키지 않는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짓말이 길어질수록, 자신에게조차 진실을 감추게 된다.
'안나'를 보고 나서, 나도 내 거짓말 하나쯤은 내려놓기로 했다.
적어도, 내 일기장 안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