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탄원서가 들어오고, 몇몇 아이들이 그만두겠다고 말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날의 소란은 서류와 회의, 그리고 침묵으로 마무리되었다.
송원장은 “당분간 영상은 올리지 말죠.”라고 조용히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론 평온했다. 수업은 그대로였고, 학생들은 여전히 내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 부름 속에서 어딘가 조심스러운 기색이 느껴졌다. ‘선생님, 힘내세요.’ 그 말 속엔 응원이 아니라 불안이 섞여 있었다.
까대기 현장에서도 분위기는 달라졌다. 기팀장이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쌤, 요즘 뉴스에도 학원 얘기 나오던데요? 학부모들 좀 심했더라구요.”
“이제 그 얘긴 끝났어요.”
“끝나긴요. 그런 일은 끝나도 마음이 안 끝나죠.”
그의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무게는 단지 상자가 아니라, 말과 시선으로도 얹힐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였다.
퇴근길, 트럭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 손등에 남은 멍자국, 그리고 눈 밑의 다크서클이 전보다 깊어져 있었다.
이 얼굴로 교실에 서는 게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하지만 또, 이 얼굴이 아니면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딸아이는 숙제를 하다 말고 내게 달려왔다.
“아빠, 오늘은 안 나갔지? 밤에 나가는 건 이제 그만하면 안 돼?”
그 한마디가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조금만 더 하고… 그만둘게.”
그 말을 몇 번째 반복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식탁 위에 따뜻한 국을 올렸다. 그 국에서 나는 오래된 위로의 냄새를 맡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생각은 더 복잡해졌다.
학부모의 불신, 아이들의 시선, 그리고 까대기 현장에서의 동료들.
모두가 나를 응원했지만, 그 응원조차 어느새 부담이 되어 버렸다.
그때 문득, 기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쌤, 무게는 나눠 들어야 덜 아파요.”
나는 한참 동안 그 말을 곱씹었다.
무게를 나눈다는 것, 그건 결국 내 삶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