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린

기억은 불완전하기에 빛이 난다

by 영백

기억은 언제나 조각난 파편처럼 제 마음속에 흩어져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명했던 장면은 희미해지고,

사소했던 순간은 뜻밖에 오랫동안 남기도 합니다.

그렇게 기억은 완전한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불완전한 편린(片鱗)들로 엮여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어느 오후가 떠오릅니다.

햇살이 마당의 흙바닥 위에 반짝이고,

바람은 꽃잎을 흩날리며 어린 제 발끝을 스쳤습니다.

그때의 웃음소리와 따뜻한 공기의 감촉은 여전히 선명한데,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무슨 대화를 했는지는 흐릿합니다.

마치 사진이 낡아 배경이 사라지고,

주인공만 남아 있는 것처럼요.


또 어떤 기억은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만난 공기와도 같습니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쏟아져 나오던

그 두근거림은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때는 그저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기 전,

제 마음이 미래를 몰래 연습하고 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얼굴 위에 번졌던 짧은 미소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은 너무 짧아서 오래 붙잡을 수 없었지만,

제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 지금까지도 반짝입니다.

기억 속에서 미소는 오래도록 빛나지만,

그때의 목소리나 풍경은 이미 희미하게 사라졌습니다.

편린이기에 아쉽고, 그래서 더 소중합니다.


기억은 위로이자 때로는 아픔이 됩니다.

행복했던 장면은 떠올릴 때마다 마음을 덮어 주지만,

아픈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날카롭게 다가와 가슴을 찌릅니다.

그럼에도 결국 그 모든 기억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빛과 그림자가 함께 있어야 그림이 완성되듯,

기쁨과 슬픔의 기억이 함께 있어야 한 사람의 삶도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습니다.


‘편린(片鱗)’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함의 다른 이름이자,

동시에 전체를 이루는 작은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빠진 조각 때문에 허전함을 느끼지만,

어쩌면 그 빈자리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순간을 더 소중히 붙잡으려 애쓰는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하루 역시 언젠가 또 다른 기억의 편린으로 남을 것입니다.

불완전하지만,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삶의 온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완전한 기억이 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한 조각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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