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데카메론』

죽음 곁에서 피어난 웃음

by 영백

『데카메론』을 읽고 난 뒤,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건

흑사병의 참혹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한가운데서도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네며 웃던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도시가 무너지고, 거리에 시체가 쌓여도,

그들은 열흘 동안 하루 열 편씩 이야기를 나누며 버텼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장난스럽고,

심지어는 천박하기도 합니다.

수도사와 수녀가 금기를 깨고

몰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지혜로운 상인이 재치로 위기를 벗어나는 이야기,

어리석은 이가 속아 넘어가 우스꽝스러운 꼴을 당하는 이야기.


처음엔 왜 이런 이야기가 필요했을까 의아했지만,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그 시절 사람들은 더더욱 웃어야 했던 겁니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삶의 이야기는 더 소중해지니까요.


책을 읽으며 문득 우리 시대가 겹쳐 보였습니다.

몇 해 전, 우리 역시 팬데믹으로 서로의 얼굴을 가리고,

거리를 두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은 온라인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버텼습니다.

『데카메론』 속 인물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도,

결국 인간을 살게 하는 건 함께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이라는 사실.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속에 남은 울림은 교훈이라기보다,

그저 단순한 사실 하나였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곁에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웃고 사랑하며 살아간다.”



참고문헌

조반니 보카치오, 『데카메론』, 박상진 옮김, 열린책들, 2013.

Giovanni Boccaccio, The Decameron, translated by G.H. McWilliam, Penguin Classics, 1995.

Giovanni Boccaccio, The Decameron, translated by Wayne A. Rebhorn, W.W. Norton & Compan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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