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점은 존재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모두 다르다면, 왜 그중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져야 할까?
‘나’의 기계는 이상하다. 누군가 말을 하면, 기계는 말을 오류 투성이 글자로 바꿔 상대에게 보여준다. 단어들을 잔뜩 빼먹고 엉망진창이다.
왜 같은 현실을 공유하는 우리는 기계들이 우리의 진실한 대화를 가로막도록 놔두어야 하는가.
‘나’의 기계는 목소리는 전기 신호로, 전기신호가 빛으로 전환하여 글자를 만든다.
데이지는 그 ‘진실하지 못한‘ 과정이 불만이다.
우리의 현실은 정말로 동일할까.
모나리자의 그림을 보고 누군가는 웃음을, 누군가는 슬픔을 발견한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세상에서 서로 다른 현실의 결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이 기계는, 단지 수많은 현실의 결 중 하나일 뿐이겠군요. 그러니 이 기계가 유난히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군요.
…
이제 저도 이 기계가 마음에 들어요.
데이지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전기 신호로, 빛으로, 글자로 전환된 목소리에서 우리는 제각기 다른 현실의 결을 볼 것이다.
글자로 전환되지 않은 목소리를 듣더라도 우리는 제각기 다른 현실의 결을 볼 것이다.
진실하지 못한 것은 비단 기계 뿐만리 아니다.
어떤 현실의 결만이 우세한 것으로 여겨질 수는 없다.
모든 현실의 결은 고유하고, 그 속에 쌓아 올려진 세월의 지혜와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없다.
서로 다른 관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데이지는 웃었다.
모든 관점은 존재한다.
우파이든 좌파이든, 가부장적이든 페미니스트이든, 합리주의든 실존주의든 간에 그것은 모두 나름의 현실이다.
모든 관점들은 각자의 현실의 결을 따라 뻗어 나가 어쩌면 다소 과격하고 다소 혐오스럽다.
평생을 살아도 우리는 타인의 현실의 결에 완전히 접속하지 못할거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관점의 내용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그러한 관점의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관점은 나름의 현실이고 그 가장 안쪽에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가 있음을 이해한다는 건.
어쩌면 모든 관점들이 다소 과격하고 다소 혐오스러워진 것은 이해받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해받기 위해 택한 강경책의 슬픈 결과일지도 모른다.
존재의 이해는 모두가 포용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