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인장 끌어안기

사랑과 고통

by 누리

’접촉 증후군‘을 앓는 파히라에게는 모든 접촉이 고통이다.

같은 장애를 가진 소영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 그는 아이를 끌어 안으며 생각한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마침내 소영은 그의 품에서, 고통의 물결 속에서 숨을 거두고, 파히라는 불행히도 그에게 고통이 곧 사랑임을 선언한다.




그래도 그 사랑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지


소설은 더이상 그 고통을 감수하고 싶은 사람이 없어진 파히라의 보조 로봇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소영의 죽음 이후, 아마도 그 모든 고통을 감수할 수 없었을 파히라는 보조 로봇들을 부순다.

로봇은 닿아도 아프지 않기 때문에, 부서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파히라에게 보조 로봇을 파괴하는 것은 단순한 화풀이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죄책감도 미안함도 쏟을 필요가 없다.

고통을 모르는 로봇은 사랑을 모르는 단순한 기계에 지나지 않기에.


그러나 이 보조 로봇은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의 공통된 맥락을 짚어본다.


당신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려고 하고, 저는 부서지는 것을 피하려고 하니까요. 엄밀한 의미에서는 다르지만, 기피의 대상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죠.


사랑은 고통이다. 고통은 기피의 대상이다. 기피하고 싶은 것을 끌어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선인장 끌어안기란 그런 의미이다.

뾰족한 고통의 선인장.

아파서 모두가 기피하는 선인장.


고통의 기피성에 대한 대화 이후 파히라는 물건들을 버린다.

소영의 물건과 비접촉 기술에 대한 메모들을 포함해, 선인장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을 처분한다.

가장 사랑하는 소영을 잃은 파히라에게는 이제 작은 사랑들이 닿은 물건들도 남지 않는다.

선인장만 빼고.


자신과 파히라가 마치 선인장 같다고 말해준 것도 소영이었어요. 쉽게 껴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 멋진 모습을 보라고 하면서요.


마침내 모든 물건을 처분한 날 밤, 파히라는 선인장을 껴안는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으로 고통 받는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사랑을 재현한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파히라와 소영 사이에는 오랫동안 고통이 없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해야 고통 없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지 잘 알았다.

그들은 행복했고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지냈다.


왜 그 찬란한 행복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소영의 소원은 고통이어야만 했을까.


아무리 깊은 사랑이라 해도 고통을 견디어야만 닿을 수 있는 사랑이 있나보다.

기쁨만이 아니라 고통 역시 사랑이기에,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에 수반되는 고통 역시 사랑해야 한다는 것.

사랑이란 그토록 무거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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