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망 채집가

소망과의 간극

by 누리

읽으면서 정말 헷갈렸던 단편이다.

‘나’가 누구인지, 소망인지 현실인지.

소망이 무엇이고 현실은 무엇인지.


그 간극이 미묘하고도 뚜렷해 얇은 경계선을 찾느라 오랫동안 책장을 뒤적였다.

마침내 찾아낸 경계선은 얇은 비단실 같고 생각지도 못한 곳을 가로지르고 있어 아름다웠다.


‘나’는 누구인가.


너는 소망의 집합이 아니야. 소망은 그 방 안에 있던 것들이었지.

……

너는 소망이 아니라 실제로 도래할 미래를 보여주는 거였어. 2030년이 가까워지면서 예언 대신 실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너를 구성했어. 소망과의 간극, 현실과 기대의 격차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지. 이제는 네가 2030년 그 자체가 된 거야.


‘나’는 소망이 아니다.

실제로 도래할 미래를 보여주는 것.


과거 ‘실제로 도래할 미래’에 가까운 것은 예언이었지만, 2030년이 가까워질수록 실제로 이루어진 것들이 ’ 실제로 도래할 미래‘에 가까워진다.


소망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 대한 예언,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실제로 만들어낸 것들.

미래에 대한 모든 기대는 소망이다.


2030년이 다가올수록 소망은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그래서 ‘소망 채집가’는 점점 더 ’ 실제로 도래할 미래‘에 가까운 소망들을 반영한다.


방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그런 소망들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오브젝트와의 상호작용을 거리낌 없이 하기 시작한 것은 2030년이 다가왔기 때문에, ‘나’가 소망보다 현실의 집합체에 가까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차 단순한 소망의 집합체보다는 현실의 집합체에 가까워진 것이다.


나는 막연하고 아득한 소망이 아니었다. 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끊임없이 요동치던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덧씌워 보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은 달랐다….. 나는 그 간극을 감당할 수 없던 거였다.


소망이 있고, ‘나’가 있고, 저 바깥에는 2030년이 있다.

소망과 현실의 상징과 현실이 있다.


‘나’는 이제 현실이자, 소망과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가 스스로 그 간극을 감당하지 못해 요동치는 인격체라는 점은 흥미롭다.

그는 현실과 소망의 간극에 실망하는 우리와 닮았다.


미래가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소망을 품고, 점점 더 많은 것을 이루어 나간다.

소망과 현실은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마찬가지로 그 간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실망하곤 한다.


진짜 나의 얼굴은 나를 예언했던 사람들이나 나를 전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나를 실제로 만난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임은 분명하다.


진짜 현실의 모습은 미래의 현실을 ‘소망’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직 현실에 다다른 사람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소망’했던 사람들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이 바로 현실임은 분명하다.


그런 것이다.

현실이 얼마나 실망스럽든 간에, 그 현실은 우리 모두가 만들어온 것이다.

현실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소망했고 우리가 만들어온 우리의 세상이다.


‘나는 엉망진창이고, 내가 무엇인지 확신이 없어.’

‘다들 알아’

……

‘그래도 이제 가야 해. 알면서도 다들 너를 기다리니까.’


우리는 그 간극이 엉망진창일 것임을 안다.

엉망진창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모르고, 또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린다.

우리가 소망했고 우리가 만들어온, 그래서 마침내 다다른 현실을.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사랑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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