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마무리, 나름의 것을 긍정할 것
‘선인장 끌어안기’에서는 고통스러운 사랑을 긍정한다.
‘멜론 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동일하지만 다른 세계를 서로 긍정한다.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는 모든 관점들을 긍정한다.
‘행성어 서점’은 나름의 소통의 방식을 긍정한다.
‘소망 채집가’는 소망과 현실의 간극을 긍정한다.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은 공작새 깃털 같은 애절한 사랑의 기억을 긍정한다.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아름다운 풍경을 기억하는 나름의 사랑들을 긍정한다.
<행성어 서점>의 1부 제목은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이다.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은 ‘선인장 끌어안기’에서 대표되는 긍정의 방식이다.
1파트의 주제는 ‘나름의 것을 긍정할 것’인 것 같다.
‘#cyborg_positive’ 는 1파트에 속한 단편들 중 유일하게 부정적인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다른 단편들과 ‘#cyborg_positive’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리지의 아이보그 눈은 아름답고, 세상은 그 아름다움을 긍정한다.
리지의 나름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세상은 언뜻 보기에 김초엽이 1파트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주제, 즉 ‘나름의 것을 긍정할 것‘이 충실히 재현된 이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리지는 그런 세상의 반응에 기뻐하지 않는다.
기묘한 동정과 시혜적 태도가 섞인 댓글들을 볼 때면 리지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
유기체 눈을 가진 사람들이 리지를 동경할 때마다 리지는 가슴 깊이 꿈틀거리는 어떤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자긍심일까?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 리지는 확신이 없었다.
왜 리지는 기뻐하지 못하는가.
이상향이 실현된 곳에서 기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기묘한 동정, 시혜적 태도.
세상은 과연 사이보그를 긍정하는가?
compassion의 원형은 라틴어 compassio로, 이는 ‘함께 고통받다’라는 의미이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동정은 단순히 누군가를 ‘불쌍히 여기는 감정’이 아니라 그 고통에 함께 참여하고, 함께 아파하고, 도와주는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동정은 그 원형대로 시행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며 행하는 동정은 대부분 그 기저에 우월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정’과 ‘긍정’은 다르다.
긍정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정보다 한 단계 아래의 감정으로서, 진정한 동정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밑바탕이다.
세상은 리지를 긍정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않는다.
아름다움만이 긍정받는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긍정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름답지 못한 것은 부정당하기 때문에, 리지는 그 자신으로서 인정받지 못한다.
세상이 인정하는 것은 리지가 아니라 리지의 아름다움이다.
그런 세상이 이상향일 수는 없다.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은, 진정한 이상향은 ‘아름답다’라는 인정이 아니라, 그저 사이보그라는 존재에 대한 긍정이 존재하는 세상일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리지의 세상이다.
우리는 있는 것을 그대로 긍정하지 못한다.
나보다 못한 것을 보고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그러나 우리는 본능을 이기는 인간이기에, 우월감을 이기고 긍정하고, 동정하고, 마침내 사랑을 한다.
우리가 그런 인간이기에, 우리가 인간이기를 잊지 않는다면 마침내 그런 세상을 만들어낼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