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난 어릴 적부터 글 쓰는 게 좋았다. 수많은 생각에서 벗어나 오롯이 글에 집중할 때면 마음의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따금 나를 들여다보며 위로받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건,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글로써 위로와 감동을 주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다행히도, 난 그 꿈을 이루어 가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절실히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공유한다는 건, 마음을 공유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열심히 썼지만 혼자 간직만 하던 글을 인터넷 플랫폼에 처음 올리던 날, 난 쉬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내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어떻게 닿았을까?’
‘누군가 내 글에 공감하며, 내가 글을 쓰거나 읽을 때 느끼던 그 감정을 느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확실히 알았다. 내가 글에 마음을 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책을 출간했을 때는 그 마음이 너무도 커져서, 다음 글을 쓰기가 조금은 힘들기도 했다. 직접 경험해 보니, 창작물은 생각보다 많은 마음과 노력이 들어가서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저작권의 범위에 있는 문학, 예술, 학술 등 모든 창작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림 한 점을 그리기 위해 누군가는 밤을 새우거나, 며칠 동안 음식도 먹지 않은 채 그림에만 전념하기도 한다. 또 몇십 번의 덧칠을 거듭하며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우리가 즐겨 듣는 3~4분 남짓의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도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창작물엔 창작자의 깊은 생각과 한숨이, 노력이, 커다란 마음이 녹아 있다. 그러니, 그 권리는 마땅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컴퓨터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며 창작자가 설 곳이 사라지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과 함께 불안감을 내비치는 창작자들도 있다. 또 이와 함께 저작권의 범위도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 고심하며 오랜 시간에 걸쳐 쓰던 글은 주제와 장르만 넣어주면 인공지능이 그럴듯하게 써주고,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누군가의 스타일이 된 그림체는 사진만 넣으면 그가 그린 그림처럼 그려주기도 한다. 또 원하는 장르의 음악을 작곡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좋아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만든 결과물에 대한 저작권을 논하기도 하고, 심지어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것의 저작권을 묻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이쯤에서 저작권의 의미와 목적을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문학, 예술, 학술에 속하는 창작물을 만든 이의 권리를 보호하여,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 목적을 갖는 저작권.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인공지능이 만든 것에 대한 저작권은 성립할 수 없다. 인간도 아닐뿐더러 마음도 들어가 있지 않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을 무조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등장도 생활의 편리성을 제공해 인간이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인공지능 안에서 저작권의 범위와 창작의 경계에 대한 확립만 확실히 된다면, 인간의 창작 활동을 도울 수 있고 이에 따라 저작권의 목적과 같이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건, 급변하는 사회에 맞춘 창작의 경계와 저작권의 범위를 확실히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공자가 쓴 논어에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시대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 변화하며 발전할 것이다. 이에 맞춰 창작의 또렷한 경계와 저작권의 범위가 재확립된다면, 창작자들도 그 안에서 더 나은 창작물을 만들어 누군가의 마음에 닿길 진심으로 바라지 않을까? 이로써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창작물을 만든 이의 권리를 보호하여 더 좋은 활동을 도모하기 위한 저작권의 이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