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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함박눈을 맞기를 그려오던 날에

미안해

by 유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을 때, 한창 길고양이를 좋아해서 고양이 간식을 들고 10월쯤에 고양이들을 졸졸 쫓아다녔다. 그러다가 한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른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비록 경계심은 살짝 있었지만 내 바로 앞까지 와서 간식도 곧잘 받아먹었다. 인사를 하고 다음날에 또 있을까 하는 기대감 반과 걱정 반으로 그 자리에 가니 다행히도 똑같은 자리에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더 경계심을 풀고 내게 다가와 간식을 잘 먹었다. 간식만 먹고 바로 가버리던 어제와는 다르게 내 앞에 앉아 그루밍도 했다. 그 모습을 두 눈에 소중히 담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로도 몇 번이고 고양이를 찾아갔다. 가면 갈수록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나중에는 만지는 것도 허락해 주었다. 어느 날은 그 고양이의 이름이 울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루 종일 사람을 쫓아다니고 울어서 울보라고. 그 이름조차도 내게는 너무나도 소중했다. 한 한 달쯤 돌봐 주니 나중에는 다른 고양이도 같이 와서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강아지 마냥 내 집까지도 따라오곤 했다.

기뻤다. 이 순간이.




책이든, 영화든, 어디에서든지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똑같았다. 적어도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 곁에 있어주겠지 생각했다.


하루는 시간이 안돼 못 가서 다음 날 아침에 일찍 나가서 울보를 찾았다. 도로 주변까지 나갔던 고양이였기에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찾았다. 그러다 못 찾겠어서 결국 포기하고 가려는데 평소에 울보의 어미를 키우던 아주머니가 알려주셨다.


"울보 찾아요?"

"네..!"


"울보 죽었는데."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무너지는 것보다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렇게 좋다고 내 다리 위까지 올라왔던 녀석인데 하루아침에 죽었다는 게 솔직히 거짓말 같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쉬니 살짝 벌려져 있던 입 사이로 흰 입김이 나왔다. 어느새 울보를 만난 지 2개월이나 흘렀으니, 12월, 겨울이었다.


아주머니는 말을 이으셨다.


"오늘 아침에, 울보 차에 치여서 죽었어요. 머리가 터져서 즉사했다고 하더라고. 생선 집 아저씨가 묻어줬을 걸?"


그 당시에는 아직 실감이 나지가 않아서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만 전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빠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추운데 안 나가도 되겠네?"

".. 응, 그러네."


애써 현실을 조금이나마 잊어보려 나도 웃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뭔가 이상했다.


그날 저녁, 아빠와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녁에 울보를 만나러 간 게 이미 하루 일과가 돼서 그런 걸까, 밖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지 않고 이 따뜻한 집에 누워만 있자니 진짜 울보가 죽은 게 느껴졌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펑펑 울었다. 너무 슬펐다. 너무너무 슬펐다.




다음날, 학교에 가야 하니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아마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를 마치고 학원차에 올라타니 나도 모르게 창밖을 바라보다 눈물이 흘렀다. 또다시 울보의 빈자리가 가슴 깊은 곳을 쑤시고 들어왔다. 그래도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고, 여전히 흘러가니 눈물을 닦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학원에 갔다. 친구들한테 울보가 죽었다는 얘기를 하는 도중에도, 분명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목소리가 떨리고 목이 잠겼다. 그래서 더 이상 얘기하지 못하고 그저 웃어넘기며 끝마쳤다.


집에 돌아와서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울보를 마지막으로 본 날에 밤하늘을 바라보며 했던 말들이 있었다.


"울보야, 친구들하고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떡하지? 다 나아질 수 있을까? 괜찮아질 수 있을까? 울보야, 대답 좀 해 줘."


고양이는 대답해주지 못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 마음이 좀 편하자고 그렇게 말했었다. 친구들하고 사이가 그렇게 안 좋았던 것도 아닌데 그저 여기저기 치이니 잠시 지쳤던 것뿐이다.


그래서 그게 너무 미안했다.

사랑한다고는 해주지 못하고, 내 걱정만 떠넘긴 것 같아서.

그래서 울보가 죽은 건 아닌가 싶어서.

집에 데려가 주지 못해서.

살찐다고 간식 아껴서.

많이 안 만져줘서.

못 안아줘서.

사랑한다고 말 못 해줘서.

미안했다.


그때의 겨울은 코끝이 아려올 정도로 아주 추웠다. 울보는 따뜻한 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걸 알지만, 여기 남아있어 주기를 계속해서 바랐다.


바보같이.


미안하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울보야~ 미안해, 누나가.. 사랑한다고 꼭 말해줬어야 하는 건데 말도 못 해줬지? 미안해..! 누나도 나중에 거기로 가면 꼭 사랑한다고 해줄게. 그때는 백번이고 천 번이고 질릴 때까지 해줄 테니까, 우리 울보 조금만 누나 기다려주면 안 될까? 누나 울보 진짜 많이 생각하는데..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누나가.
우리 울보 고작 한 살밖에 안 된 조그마한 아가였는데 누나가 세상의 따스함을 제대로 못 느끼게 해 준 것 같아서 미안해.
울보가 아직도 누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올 것 같아서 자꾸만 뒤 돌아보곤 해.
나중에 누나도 거기 가면 우리 눈 내리는 것도 꼭 같이 보자!
울보야,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나한테 사랑이란 걸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아구 예쁘다, 우리 울보.

이렇게 예쁜데 왜 누나가 사진을 많이 안 찍어놨을까.

누나한테 미운 점이 너무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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