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아가고 싶어
어렸을 적에는 그저 세상이 따뜻했다. 어른들은 우리를 지켜주는 존재였고, 친구들은 날 웃게만 해주는 존재였다. 성적 따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걱정도 없었다.
부모님은 항상 내 편을 들어주셨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였다.
그런 내가,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 와서 다시 세상을 보았을 때에는 많은 것들이 변해 있었다. 내 마음은 아직 어렸을 적 그대로인데 모두들 변해 있었다.
어른들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고, 친구들하고는 다투기 일쑤였다. 성적은 내 인생에서 꼭 포함해야 하는 게 되어 버렸고, 걱정은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무엇보다 이젠 부모님이 날 등져버리실 때가 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SNS 속 사람들과, 인공지능은 나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냥 대놓고 말하자면, 소리 내어 펑펑 울어본 게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소리 내어 우는 법도 잊어버린 난, 조용히 그 자리에 서 눈물만 흘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슬픈 감정도 사람들 앞에선 나타내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울면 부모님이 속상해하실까 봐, 친구들한테 너무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일까 봐, 사람들이 날 쉽게 볼까 봐 등의 이유로 울지 못한다.
남들한테 내 감정을 드러내는 게 어색해져 버렸기에.
내 나이엔 울어도 되고, 놀아도 된다고 한다. 근데 그게 말만 쉽지 솔직히 어떻게 그러나 방법 좀 알고 싶다.
나는 노는 걸 참 좋아한다. 하다못해 부모님도 나보고 노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하냐고 한다. 그렇게 꾸중을 들어도 아무래도 성적에 얽매여 공부만 하기보단 마음껏 노는 게 더 좋긴 매한가지다.
최근에 친한 친구들 2명과 자습 시간에 몇몇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 A가 물었다.
"너넨 부모님 몰래 울어본 적 있어?"
그 질문에 난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당연스럽게 툭 내뱉었다.
"당연하지."
당연히 다른 한 친구도 당연하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친구 B가 뜻밖의 답을 꺼냈다.
"없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울어본 적이 없다니, 놀라웠다. 나는 그동안 몇십 번이고 울며 버텼는데 지금까지 본인의 감정을 부모님께 나타내며 살았구나 싶었다. 나는 부러웠다, 그 친구가. 정말로.
친구 A는 아마 있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이미 예상했던 답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넘겼지만, 친구 B가 없다고 했던 장면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 나는 왜 부모님 몰래 울어본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 걸까? 당연한 게 분명 아닐 텐데 왜 그걸 당연하다고 여긴 거지? '
하루 종일 그 일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혹시 남몰래 우는 게 당연하다고 무의식적으로라도 여기고 있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어 이 글을 썼다. 우리는 남몰래 우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 아니다.
당신은 무려 5억 분의 1 확률을 뚫고 태어난 대단한 사람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태어나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게 조금 억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단 태어났으니 열심히 살아봐야지 어떡하겠는가?
그러니 제발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이렇게 아무리 말해도 결국에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건 본인 자신이다. 지금 당장 자기 자신을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안이주면서 "너무 수고했어."라고 말해주자. 위로를 받고 싶을 때에는 남이 아닌 먼저 자기 자신이 해줘야 하는 게 맞으니.
우는 건 당연하지만, 속으로 소리 없이 우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우울해도 좋다. 울어도 좋다. 소리 질러도 좋다.
본인의 감정을 나타낼 수 있는 거라면 뭐라도 좋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