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4

가치

by 유진

혜유는 천천히 민의 옆으로 가 앉았다.


"오늘 일은.."

"괜찮아. 너도 많이 참았잖아."

"하지만.."


민은 손에 들고 있던 농구공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오히려 오늘 네가 그렇게 뛰쳐나가서 애들 전부 다 당황했어. 너 안 괜찮다는 걸 처음 안 거야. 모르는 것보단 아는 게 나으니까."

"이제 나 내일 학교에 어떻게 가..?"

"음.. 글쎄. 정 그러면 나랑 같이 다니지, 뭐."


혜유는 한숨을 쉬며 말없이 고개를 떨궈 바닥만 바라보았다.


"오늘 너 그렇게 뛰쳐나가고 선생님들도 좀 당황하시긴 하더라. 벌점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벌점 받으면 고등학교 진학에 영향 가겠지..?"

"아무래도. 근데 나는 너 오늘 엄청 멋있어 보였어."


민의 말에 혜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을 쳐다보았다. 민은 무심한 척 웃으며 말했다.


"싸움하는 것도 멋있었고, 네 감정 드러내는 것도 멋있었어. 나만 그럴 걸 수도 있고."


혜유는 입을 삐죽 거리며 답했다.


"내가 뭐.. 안 멋있었어. 후회 엄청 하고 있거든?"


민이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난 가본다. 집에서 형 기다리거든. 이제 나 혼자 아니야."

"너한테 형도 있었어?"

"응, 좀 외동처럼 크긴 했지만 형 있었어."

"아.. 알았어, 잘 가."


민은 혜유에게 손을 흔들고 아파트 단지를 나갔다. 혜유는 민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자 엄마는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안방 문이 닫혀 있었고, 혜선만이 신발장 앞에 앉아 혜유를 기다리고 있었다. 혜유를 바라보는 혜선의 눈빛에는 걱정만이 담겨 있었다.


"어디 갔다 와?"

"친구.. 있길래 얘기 좀 하고 왔어."


혜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잘못 한 건 알지?"

"아, 응.."

"그래, 알았으면 됐다."


혜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혜유에게 다가갔다. 무슨 꾸중이라도 할 것 같았던 분위기와는 달리 혜선은 말없이 혜유를 안아주었다.


"미안해, 언니가 언니 역할을 못 해줘서."

"언니.."

"힘든 것 같아 보이면 언니가 가장 먼저 알아채 줬어야 했는데. 맨날 네가 말하기 전까진 모르고.. 나 진짜 바보 같지 않냐..?"


혜선은 혜유를 안아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혜유는 혜선의 처음 보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다.


"언니, 그게 무슨 소리야.. 언니는 나한테 좋은 언니인데.."


혜유도 이내 덩달아 혜선을 안고 같이 울기 시작했다. 집 안에 혜유와 혜선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 신혜유 미친 거 아님?
ㅇㅇ 존나 아픔. 지가 뭔데 날 때리고 ㅈㄹ이야.
지 본성 드러낸 거지, 뭐.
김연정, 너 우리가 네 친구 해줘서 다행인 줄 알아라 ㅋㅋ


연정은 말없이 휴대폰을 보기만 했다. 어떠한 답장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늘 혜유의 표정, 행동.. 전부 다 생생하게 기억났다. 무엇보다 자신을 보던 혜유의 눈빛은 더욱더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야, 김연정.


그 순간, 휴대폰 알람이 울리며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다. 이름을 확인해 보니 민이었다.


왜.
너 신혜유랑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
네가 뭔 상관인데.
하.. 됐다. 나도 처음엔 널 좋기 생각했는데, 이젠.. 너 이런 애인 줄도 몰랐고, 남한테 상처 주는 게 쉬운 애인 줄도 몰랐다. 그냥 우리 모르는 사이로 지내자.
내가 언제 너한테 친한 척을 했다고 ㅋㅋ
너한테 다가가 준 신혜유가 병신이다.


연정은 민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나한테 다가와 준 신혜유가 병신이라니, 나한테는 다가가 줄 가치도 없다는 얘긴가 싶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금,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