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집 앞 놀이터에 가서 땅바닥만 바라보며 그네에 앉아있는데 작은 손이 혜유에게 막대사탕을 내밀었다. 고개를 올려 쳐다보자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언니, 이거 먹어."
"어? 아, 고마워.."
혜유는 막대사탕을 받아 들며 웃었다. 여자아이는 그런 혜유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언니, 땅만 보면서 살면 안 돼."
".. 응?"
혜유의 입가에 미소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땅만 보면서 살면 언젠가는 하늘을 보는 법을 까먹어서 하늘을 못 보게 된댔어. 언니, 오늘 하늘 한 번이라도 봤어?"
".. 아니."
"봐봐, 안 보게 되잖아. 그게 다 언니가 땅만 보면서 살아서 그래. 나는 오늘도 하늘 엄청 많이 봤어."
혜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푸른 하늘이었다.
"하늘 엄청 예쁘지?"
"응.. 엄청 예쁘네.."
"앞으로도 하늘 보면서 살아, 언니.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주고. 알았지?"
여자아이는 혜유에게 손을 흔들고 어딘가로 뛰어갔다. 혜유는 여자아이가 준 막대사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혜유의 눈에서 자연스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를 모르겠네.'
주환은 수업을 듣다 말고 다른 생각을 했다. 혜유와 연정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그 무슨 일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혜유와 연정밖에 그 일을 알아서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연정이 모습이 갑자기 확 바뀐 것도 그렇고.. 하, 뭔지를 도통 모르겠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주환은 혜유의 반으로 향했다. 그 순간, 주환의 뒤에서 누군가가 주환을 불러 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연정이 서 있었다.
"왜?"
"주환아, 혜유 찾으러 가는 거면.. 지금 혜유 없어."
"어디 갔는데?"
"조퇴한 것 같던데.."
주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연정이 주환을 붙잡았다.
"주환아, 혜유랑 나.. 갑자기 왜 이러는지 궁금하지 않아?"
".. 갑자기 그건 왜?"
"너 궁금해서 혜유 찾아온 거 아니었어?"
주환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봐, 맞네."
".. 무슨 일인데?"
연정은 잠시 말없이 주환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동안의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꾸밈은 없었다. 더 이상 연정은 꾸미지 않기로 했다. 자신의 겉모습이든, 자신의 속모습이든.
9시가 되어 갈 무렵인 저녁, 혜유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기만 했다. 평소 같으면 한창 공부를 하고 있거나, 연정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오늘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로부터 혜유에게 전화가 왔다. 혜유는 힘겹게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연정이었다. 연정이라는 이름을 바라보는 혜유의 숨소리가 조금씩 떨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보고 싶던 이름이지만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이름이기도 했기에.
혜유는 잠시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며 고민을 하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혜유야, 나 연정인데.. 잠깐만 집 앞으로 나와줄래?"
"무슨 일인데."
"할 말도 있고 해서.."
".. 알았어."
혜유는 옷을 갈아입고 집 앞으로 나갔다. 연정이 혜유를 떨리는 눈동자로 쳐다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