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그냥 집에 가기 싫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런 날이 가끔 있다. 발걸음이 자동으로 편의점 쪽으로 꺾였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안은 밝았고, 생각보다 따뜻했다. 그게 조금 안심됐다. 계산대에 있는 알바생은 나를 보지도 않았다. 그게 더 좋았다. 누군가 나를 인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같았다.
컵라면 앞에 서서 한참을 있었다. 뭘 고를지 고민했다기보단, 시간을 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졌으면 했다.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기다렸다. 멍하니 서 있는데, 금속 표면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피곤해 보였다. 생각보다 더. 내가 이렇게까지 지쳐 있었나 싶었다.
자리에 앉아 창밖을 봤다. 차는 거의 없었고, 가로등만 일정한 간격으로 불이 켜져 있었다. 세상이 나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괜히 서운했다.
라면을 먹는데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뜨겁긴 한데, 그냥 입 안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씹고 삼키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계속 비어 있었다.
갑자기 오늘 하루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침에 뭐 했는지, 누구랑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기보단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전부 다.
괜히 계산대를 봤다. 알바생은 여전히 거기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세상은 다 괜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면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가 차가웠다. 편의점 불빛이 등 뒤에서 등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몇 걸음 걷다가 멈췄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은 분명 저쪽인데, 그게 목적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걸었다. 멈추면 더 이상해질 것 같아서.
뒤돌아보지 않았다. 괜히 보면, 다시 들어가고 싶어질 것 같았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날 밤, 집에 도착했을 때도 이상하게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덜 비어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