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by 여백

아침이었는데, 이미 하루를 다 쓴 기분이었다. 창밖은 밝았고, 사람들 목소리도 들렸는데, 나는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사람 같았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펜을 쥐었다 놓고, 종이를 한 번 접었다가 다시 펼쳤다.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금 손을 대면 전부 어설퍼질 것 같았다.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들어왔고, 커튼이 조금 움직였다. 그 움직임을 한참 봤다. 내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다는 게 그제야 실감났다.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 꺼졌다. 알림은 없었다. 그래도 몇 번을 더 확인했다. 누군가 나를 찾고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확인하는 일 같았다.


물이 식은 컵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갈증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었다. 몸이 원하는 게 뭔지 판단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시계를 봤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도 되는 건지 잠깐 고민했다. 답은 없었다.


밖으로 나갈까 하다가 관뒀다. 나가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있기도 애매했다. 그 애매한 상태로 조금 더 앉아 있었다.


해가 조금 기울었을 때, 방 안의 색이 달라졌다. 그걸 보고 나서야 내가 하루 안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날은 결국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전부 놓친 것 같지는 않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하루는 분명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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