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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주 Oct 03. 2024

구글 드라이브 영원히 삭제된 문서 복구

#구글 드라이브#스프레드시트#삭제된 문서

구글 포토에 사진이 자동 백업되니 늘 저장용량이 부족하다고 구글이 징징댄다. 그래서 들어가면  Basic (100 GB)을 월 2,400원에 가입하라고 부추긴다. 첫 한 달은 600원으로 할인도 해준다. 기본 용량이 15GB인데, 2,400원에 100GB를 준다니... 아이스크림 한 개 가격인데도 선뜻 결재를 못한다. 한 끼 배달음식 2만 원은 안 아까워도 2400원은 아깝다. 생돈이 나가는 것 같다. 

불필요한 사진을 지운다. 계정을 하나 더 만든다. 

새 계정은 사진 백업을 못 받게 잠가둔다. 새 계정으로 다시 시작하는거야!


이전 계정으로 또 알림이 온다. 

결재를 하세요!!! 무려 100GB를 드립니다! 당신은 정말 답답한 곰탱이군요!


오랫동안 사용을 안 한 계정이라 캡처된 사진, 강아지들의 반복적인 표정 사진, 풍경사진을 지운다. 

문서(스프레드시트, pdf파일)를 지운다. 

"정말로 삭제하시겠습니까?"

"네"를 누른다.

삭제되어도 휴지통에 있겠지, 하면서 구글의 경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퍼뜩 정신을 차린다.

'아, 2017~18년도 가계부를 지웠나?'

찾아본다. 없다. 삭제된 사진은 휴지통에 보관이 되어있는데 문서는 없다.

현재 시간은 밤 11시 30분. 하루종일 강의를 다녀와서 피곤이 몰려든다. 졸린다.

2017년, 그 이전도 아니고 이후도 아니고 딱 미국에 갔을 때, 가계부

그건 그냥 가계부가 아니라 미국 생활의 기록이었다.

언젠가는 미국생활도 글로 쓰리라. 기억이 잘 나지 않을지라도 그때의 미국 물가와 여행지와 주차요금 등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기억이 새록새록 나겠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인터넷 폭풍 검색을 한다.

창을 2개 띄워놓고 하라는 대로 한다. 안된다. 어느 시점에서 도돌이표로 돌아온다.

머리는 피곤으로 과부하가 되었고, 쓸데없이 심장은 두근대고, 내일 하라고, 내일 맑은 정신에서 하라고 뇌가 속삭여도 멈출 수 없다. 내일 지구가 멸망이라도 하는 것처럼 매달린다.

유튜브를 본다. 블라블라~ 서론이 길다. 하라는대로 해본다. 

도대체 뭐가 된다는거야!

블로그도 뒤진다. 왜 남들은 다 되는데 나만 안되는데?

그러다가 한 사이트를 찾았다.

다만 그 사이트가 몇 년 전이라 조금 달라져있다.


결론적으로 가까스로 문서(스프레드시트)를 복구 했다.

아마도 내가 치매가 오지 않는 이상, 또 이런 실수를 하지는 않겠지만 복기해본다.


1. <구글 고객센터>를 검색하고 들어간다.

휴지통을 보아라, 25일 동안 저장되어 있다, 뭐 이런 설명이 나온다.

하지만 구글 문서는 완전히 삭제된 게 맞다.

2. 구글 드라이브를 클릭한다.

3. 언어를 영어로 바꾼다. 

4. 검색창에 Please restore the permanently deleted document

라고 쓰거나 아래 메뉴 중에 Find, delete~를 누른다.

5. 다음  Start ~ 어쩌고에서 Request file recover를 누르면 구글 계정이 나오고 계속을 누른다.

6. 퍼스트 네임(이름), 라스트네임(성), 복구하길 원하는가?->Yes

    종류는 무엇인가?를 눌러서 선택하고 Submit를 누른다.

7. 구글메일을 열어본다.

8. 다시 구글 드라이브에 들어가서 문서를 열면 삭제된 모든 문서가 되돌려져 있다.


유레카!

가계부가 복구되었다.

2017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1년 살았던 삶의 기록이 적혀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 이렇게 간단한 걸 2시간을 헤맸다.

공항에서 나전 필함, 머리끈, 팔찌는 왜 샀지?

아, 미국 친구를 사귀면 주려고 샀지. (미국 친구를 사귀기는커녕 한인사회에서만 지내다 왔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에서 1년 살이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쉼'으로 떠났던 여행이었지만, 세팅하는데 한 달, 귀국하면서 살림살이 정리하는데 한 달은 걸린 것 같다. 사실 '쉼'이라기보다는 도피였고, 아이들 하이스쿨 입학부터 산만한 FP(MBTI)가 살기엔 녹록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래서 자랑도 하기 싫었고, 되돌아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삭제까지 되는 건 바라지 않았다. 이것조차 내 삶의 편린이니까.

 

함부로 지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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